‘병 있다’고 해 닦는 것이 점수법
원리 알고 닦으면 점수법도 돈법
해설 : 육조는 근기에 따라 수행을 해야 한다고 말한다. 중생들은 실제로는 업에 붙들려 있다. 업은 우리가 어두운 무명과 착각에 의해, 집착에 의해 형성되는 습관이다.
애완견을 예로 보자. 애완견에게 특별한 별식을 요령을 흔들고 주면 강아지가 요령에 별 관심이 없다가 맛있는 치즈에 의해 다음에도 습관처럼 길들여진다. 애완견은 요령 소리를 기다리는 분별상을 지은 것이다.
요령은 별식을 먹게끔 하는 대상이 되고, 생각을 일으켜 강아지는 치즈가 나온다는 룰을 정해버린다. 본래 없던 것이 업을 형성하는 것이다. 이제는 주인이 요령을 흔들면서도 치즈를 안주면 개가 화가 난다. 그러나 요령과 실생활은 관계가 없다. 흔들어서 버려 놓은 것이 된다. 화가 난 개는 요령을 흔드는 소리에 별식이 없으면 밤새 스트레스를 받는다.
생각을 지속시키는 지속성으로 인해 업이 형성되고, 업에 맞는 행동이 나온 것으로, 탐진치(貪瞋癡)가 나온 것이다. 탐욕이 일어나면 그 순간 아귀가 되고, 성냄으로 그 순간 독이 되고, 그 순간 바로 축생이 되는 몸을 받는다. 분별상을 만들지 말라는 것은, 집착하면 아상 인상 중생상 수자상에 빠지고 보살의 길에서 벗어나는 것을 일컫는 말이다
하근기들에 의한 공부 방법과 달리 돈법은 최상의 대상을 놓고 관하지 말라는 의미로서, 종지와 정견을 정확히 알고 믿음 그대로 보살행을 행할 뿐이 되는 것이다. 승가에서 이를 몰종적(沒迹)이라 한다. 곧 종적을 없애 버리는 것이다. ‘선을 아는 자는 종적을 남기지 않는다’는 말이 그것이다.
혜능의 가르침은 이런 선의 핵심을 드러낸다. 그래서 <육조단경>을 모든 선의 근본 뿌리라고 하는 것이다. 그러면서 육조는 북방 수행법은 대상을 지어 관하면, 관하는 것이 나누어져 정과 혜로 갈라지는 것을 지적한 것이다.
<단경> 본문을 보자.
“선지식들이여,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둘이 아니니, 정과 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정(定)과 혜(慧)는 불과 불빛과 같다. 불빛은 혜이며, 정은 등불이다. 불빛 없는 불은 존재할 수 없다. 우리는 앞에서 예를 든 그 강아지가 주인이 치즈를 안줘 화가 나는 것으로 마음이 병이 듦을 살펴보았다.
업으로 인해 화가 나고 병드는 것이다. 그래서 육조는 병이 없다고 했다. 병이 있다고 해서 닦는 것은 점수법이다. 그 원리를 알고 점수법을 닦으면 점수법도 또한 돈법으로 들어간다. 이처럼 무엇을 하든 수행의 중추는 보살행이다. 남을 위해 조건 없이 도와주고 남을 위해 함께 어려움을 겪고 마음의 문을 열고 공덕행을 하는 자체는 이미 돈법에 들어가 있는 것이다.
반면 보살행을 통해서 습화된 보살이 된다는 것이 점수법이다. 보살의 공덕을 짓다 보면 보살이 되는 것이 점수라는 것이다. 인위적으로 목적을 통해 착함을 행하는 것이 점수이다. 착함의 실행으로 남도 기쁘고 내 마음의 해방으로 행복해지는 것이 점점 닦는 단계이다.
등불이 나에게 먼저 비추는 것을 지나 타인에게 길을 밝히는 것과 같아서 그 자체가 계속되는 선을 하면서 자체까지 잊어버리는 것이 된다. 이는 착함이 선인 줄 모르고 그것도 못 느끼게 되는 것이며, 업을 녹이며 습화시켜 나가는 것이다. 그래서 점수법도 대단한 것이다. 원리적으로는 돈법이 훌륭하고, 실천적으로 점수법은 대안을 제시해 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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