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진정환 행복은 어떻게 찾아야 하는가
대부분 세상 사람들은 살아가면서 영원한 행복과 자유로움을 추구합니다. 더구나 불교를 접하는 불자들은 청정함을 더 한층 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는 세상살이에서 영원한 행복을 구하는 것은 상당히 어렵습니다. 물론 청정함을 유지하는 것도 더욱 힘들고 어려운 일입니다.
일상인들은 끊임없이 경쟁을 반복하면서 성공을 거듭하기도 하지만 실패에 대해 경험하는 것도 다반사입니다. 그렇듯 인생의 90%는 불만이나 괴로움 속에서 생활을 하기에 사회는 더욱 더 우리에게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하고 있고 그런 사회체제가 괴로움 속에서도 유지되고 있는 것입니다.
불교사상의 근간인 무상(無常)론은 우리의 삶에도 잘 적용됩니다. 모든 것이 변화를 거듭하기에 들판에 아름답게 핀 꽃도 시간의 흐름 속에서 시들기 마련이고, 젊고 강한 사람도 어느 순간부터 아름다움을 뒤로 하고 시들어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가 추가하는 것과는 반대로 이 세상의 모든 일은 무상하며, 그렇기 때문에 내가 원하는 것만큼의 자유로움을 누릴 수 없는 것입니다. 특히 인간 세상에서 우리 삶은 나 홀로의 절대적인 삶이 아니라 서로가 상대적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연기적 존재들이기에 상대의 마음도 바뀌고 내 마음도 바뀌는 현실에 적응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가 변화에 대해 알고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 변화가 자신이 생각하는 것과 같은 변화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결국 자신의 생각 그대로 변화되는 않는 세상에 살면서 항상 불만이 쌓이고 괴로움의 고해가 펼쳐지는 것입니다.
결국 행복하게 사는 길은 이러한 생각을 바탕에 깔고 살아가는 지혜를 찾는 것입니다. 실제 불교에서 말하는 무상, 고해(苦海), 무아(無我) 등을 사실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으로 우리는 이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먼저 영원한 행복과 자유와 청정함을 적극 추구하는 것에 높은 비중을 둡니다. 바로 불교의 ‘전도(轉倒)’는 이런 뒤바뀜의 원리를 말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은 더욱 꼬여가고 어려워져 갈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르침은 눈앞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그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하고 사실 그대로 받아들여야 함을 말합니다. 정확하게 자신과 주변을 봐야 자신이 이를 뒤바꿀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수행하기 위해 먼저 뒤바뀐 소견을 버릴 것을 말씀했습니다. 무상ㆍ고ㆍ무아ㆍ부정(不淨)을 넘어 열반의 4가지 모습인 상(常) 락(樂) 아(我) 정(淨)의 경지에 이르러야 함을 가르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에 있어 가장 필요한 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슬퍼하거나 고민하거나 괴로워하기 보다는 충실감이 넘치는 자신의 삶을 지탱해야 합니다. 그런 충실감을 위해 우리는 자신의 가족을 소중이 여기고 살아야 합니다. 나아가 자신이 소속해 살고 있는 우리 사회를 소중히 생각하고, 조금이라도 이 사회와 세상에 보은을 하려는 생각을 갖고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야 말로 모든 사람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행복한 삶이 될 것입니다.
불교의 수행이란 헛된 욕심과 전도된 생각을 버리고 생사를 해탈하여 부처님과 같은 존재가 되는 것입니다. 수행 방법에는 참선 염불 주력 경전공부 관법 등 다양한 길이 있지만, 우리의 일상에서도 이를 쉽게 접근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실제 행복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여러 제자들이 행복에 대해 질문을 했습니다. 이에 부처님께서는 “좋은 환경에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훌륭한 부모를 모시고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아내와 아이를 사랑으로 보살피고 기르는 것이 행복한 것이며, 또 스스로 바른 서원을 세우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바른 생업에 종사하고 힘쓰는 것이 행복한 것이니, 이것이 인간 최상의 행복”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더 구체적입니다. 행복에 대해 ‘타인을 존경하고, 스스로 겸손하게 사는 것이 행복한 것’이라고 말씀했습니다. 나아가 어리석은 사람과 가까워지지 않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만족함을 알고 항상 은혜를 생각하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어진 사람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때때로 좋은 법문을 듣는 것이 행복한 것이고, 어른이나 스승들을 잘 모시는 것이 행복한 것이란 말씀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 최고의 행복에 대한 구체적 요약입니다. 그렇지만 그 내용을 보면 부처님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은 모두 당연한 이치를 일깨운 것입니다. 그러나 곰곰이 생각해보면 이러한 가르침을 실천하려면 상당한 각오가 필요합니다. 불교의 구도자들은 그렇게 수행을 합니다. 수행하는 사람은 수행에 대한 바른 마음의 자세를 갖춰야 합니다.
수행은 잘 먹고 잘 입는데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잘 먹고 잘 입으려 한다면 타락의 길로 빠지기 마련입니다. 먹는 것 입는 것에 탐착하지 않는 수행자야말로 부처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진정한 제자가 되는 것입니다. 수행자가 잘 먹고 잘 입고 다니면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에 치중하면 바른 마음의 자세를 가질 수가 없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구도에 장애가 될 뿐입니다. 일반인에게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스스로 계행을 잘 지키고 수행에 한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자신의 가족을 봉양하는 것으로 일상생활을 유지해야 항상 깨어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행복과 수행은 같은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우리는 스스로에게 항상 물어야 합니다. ‘나는 과연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가고 있는가?’ ‘내게 주어진 인생 시간을 허망하게 소진하지는 않는가?’ 이러한 냉철한 자기성찰과 반성을 수행의 근간이기도 하지만, 여러분이 행복에 이르는 길잡이기도 합니다.
불교에서 수행자가 매일매일 보다 새롭고 보다 각성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수행하는 것과 같이 여러분들은 부모를 모시고 아이와 아내·남편을 사랑으로 보살피는 것에서 행복한 삶의 길을 닦을 수 있습니다. 이를 서원하며 생업의 현장에서 바른 삶을 영위해 나갈 때 행복의 문은 저절로 열리는 것입니다.
도(道)에 집착한 수행자들의 선문답으로도 행복의 의미를 되새겨 볼 수 있게 합니다. 중국 당나라 유엄선사는 청원행사의 법을 이어 도명(道名)을 떨쳤습니다. 높은 벼슬의 낭주자사 이고가 법문을 청했으나 스님은 만나주지 않았습니다. 불심이 강한 자사가 스님을 친견하려고 3일 동안 먹지도 않고 기다렸다가 잠깐 대면하는 순간, 바짝 마른 초라한 스님의 외모에 크게 실망했습니다. 그렇지만 불심이 깊은 그는 절을 하고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소원이 참다운 도(道)를 깨닫는 것입니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스님의 답은 손을 위 아래로 가르치며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 속에 있느니라”는 말이었습니다.
이 선문답은 우리의 행복에 대한 일깨움을 말해주기에 충분합니다. 결코 외형과 변화를 좇아가며 행복을 찾을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 바로 옆의 존재에 대해 다시금 행복의 실마리를 찾기 바랍니다. 행복을 위해 일상에 좀 더 충실해지라는 것이 오늘의 우리들에게 필요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