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깨달음이란
본문: 마음자리가 밝아지면 실낱만큼도 막힘과 장애가 없어서, 지고 이김, 너와 나, 옳고 그름 등의 지견(知見)과 알음알이를 버리고 크게 쉬어버린 안온한 데에 도달하거늘, 여기에 어찌 두 가지 이치가 있으랴.
해설: 마음자리를 깨달으면 일체가 다 통한다. 사실 깨닫기 전에도 통하지 않은 적은 없었지만, 스스로 알지 못하고 있었을 뿐이다. 그러다가 기연을 만나 비로소 밝게 사무쳐 깨달았을 때, 마음이란 본래부터 ‘막히니, 통하니’ 하고 분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게 되는 것이다. 한바탕 돈오한 뒤에는 크게 쉬어져서, 온갖 알음알이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그저 맑고 고요하고 편안한 이 자리에는 또 달리 구할 것이 없으므로, 잠시 미세망념이 일어날지라도 다 내려놓으면 저절로 평안해진다.
본문: 이른바 “모든 시냇물은 제각기 흐르지만 바다로 다 함께 돌아간다”고 한 것이다.
해설: 오가칠종의 가풍은 강물과 같아서, 결국에는 법성해(法性海)로 돌아간다. 오대양이 한없이 넓지만 어디라도 그 물맛은 오직 일미(一味)인 것처럼, 불법도 일심법으로 귀결된다. 공부인이 한 번 바다를 보아도, 그것으로 미세망념까지 다 조복되는 것은 아니다. 바다를 본 이후에 비로소 진정한 믿음이 생기고, 그 힘을 바탕으로 다 내려놓을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늘 드러난 이 일 외에 또 무슨 일이 있다고 찾고 말고 할 것인가? 그런 줄 알면 이제 되었다” 하고 쉴 수 있어야 한다. 자성이 본래 구족함을 확인한 자리에서 ‘닦은 바 없이 닦는 것(無修之修)’을 지어갈 수 있어야, 비로소 참된 정진이라고 할 것이다.
본문: 요컨대 원대한 식견을 갖춘 향상(向上)의 근기라야 불조의 뜻과 기개를 이을 수 있다. 그런 뒤에야 조실의 문지방 안으로 깊숙이 들어가 철저하게 믿어서 곧장 붙들어 잡아야 비로소 인가를 받고 본분의 가풍을 감당할 만하리라. 이밖에 부디 비밀스럽고 보배로이 잘 간직하여 말을 삼가고, 쉽게 놓아 지내지 말라.
해설: 본마음과 초점이 정확히 맞아떨어지기 전에는, 혼침(昏沈)과 도거(掉擧)가 끊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히 계합되어 내외명철 하게 되면, 그 어떤 일이라도 본래 한바탕인 마음자리를 벗어나는 일이 없다는 것이 명확해진다. 그때는 미혹의 당체가 바로 깨달음이고 번뇌가 보리인 줄을 저절로 알게 되어서, 하루 종일 생각을 일으켜도 일으킨 바가 없고 밤낮으로 일을 해도 일한 바가 없게 된다.이렇게 깨달음을 인가 받고 원융무애 할 수 있어야, 비로소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고 조사들의 본분가풍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