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이야기

[스크랩] 부처님께 절을 올릴때 마음 가짐은

JU_LEE 2015. 3. 7. 09:37

잡념 내려놓고 예경할 때 비로소

그분의 마음과 하나 되어 만나니…

법당에 들어가 절할 때의 마음가짐은 공손하고 정성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정성을 다해 목조 부처님이든 그림으로 조성한 부처님이든 어떤 분에게 절을 올린다는 것은 그분을 지극히 공경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자신의 가장 높은 머리를 상대의 발에 대고 절을 할 이유가 없을 것이다. 간혹 불상 등에 절을 하면 그분의 신통력으로 소원이 이뤄진다는 소박한 믿음으로 절을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렇다면 절할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는 어떠해야 하는지를 좀 자세히 알아보도록 하자.

청나라 홍찬스님은 <예불의식>에서 경론을 인용해 절할 때의 마음가짐과 자세에 대해 다음의 다섯 단계로 설명하고 있다. 절을 하고자 할 때는 절을 올리는 분을 깊이 숭상하며, 그 분의 뛰어난 공덕을 찬탄하며 불전(향대)에 이른다. 그리고 첫째는 몸을 바르게 하고 잡다한 생각을 그치고, 둘째는 성인의 공덕을 헤아려 생각하며, 셋째는 눈으로 존경하는 분의 얼굴을 바라보고, 넷째는 두 무릎을 바닥에 대며, 다섯째는 손으로 향로를 잡은 다음, 계향 정향 혜향 하는 향의 공덕을 찬탄하는 게송을 염송하기 시작한다. 이 다섯 단계의 방법 가운데 다섯 번째 향로를 잡는다고 하는 행위는 현재 우리나라 불교계에서는 볼 수 없는데, 향을 사라 올린다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차례대로 내용을 정리해 보자. 절을 하러 불전에 나아가기 전에 절을 올릴 대상인 성인을 깊이 숭상하라고 하고 있다. 숭상하고 공덕을 찬탄하며 불전에 나아간다. 이때 찬탄하는 대표적인 게송으로 대웅전의 주련으로 많이 걸려 있는 다음 게송이다. ‘刹塵心念可數知(찰진심념가수지) 大海中水可飮盡(대해중수가음진) 虛空可量風可繫(허공가량풍가계) 無能盡說佛功德(무능진설불공덕)’. ‘온 세상의 육진(우리의 인식기관인 육근이 만나는 대상)을 헤아릴 수 있고, 중생의 잡다한 마음을 알 수 있으며 큰 바다의 물을 마실 수 있고, 퍼낼 수 있으며 허공을 헤아릴 수 있고, 바람을 잡아맬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이들이라도 결코 부처님의 공덕은 다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부처님의 공덕은 우리들의 작은 생각으로 헤아릴 수 있는 정도가 못 되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부처님께 다가가게 된다. 이렇게 찬탄하고 부처님 앞으로 나아가라는 것이다. 옛날 어른 스님들은 이같은 마음가짐으로 법당에 들어가라고 법당의 네 기둥에 주련을 달아놓은 것이다. 그러므로 주련은 장식물이 아니라 우리를 인도하는 교재라고 하겠다. 이렇게 부처님의 공덕을 찬탄하며 불전에 나아가게 된다.

이어지는 자세와 마음가짐을 보자. 첫째는 몸과 마음의 자세를 정리해 주고 있다. 몸은 단정히 하란다. 공경하는 분 앞에 나아가니 몸을 단정히 하는 것은 너무나 마땅한 일일 것이다. 몸을 단정히 하려면, 절을 하게 될 때 그에 적합한 의복을 갖춰 입어야 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마음을 다잡는 방법으로 잡다한 생각을 쉬는 것이다. 잡다한 생각을 가지고 절을 올리는 것은 공경의 자세라고 할 수 없다. 잡다한 생각을 쉴 때 다음의 성인의 공덕을 헤아릴 수 있을 것이다. 부처님의 공덕은 한량없다는 것을 헤아리며, 눈을 들어 부처님의 존상을 우러러 뵙는 것이다. 공덕을 헤아리며 부처님의 존안을 바라볼 때 비로소 마음속의 심상과 그분의 마음과 하나로 만난다. 마치 스승과 제자 간에 전법하는 조동종의 면수상승(面授相承)처럼. 이어 무릎을 바닥에 대고 향을 들어 올리며, ‘계향 정향 혜향~’ 이라고 염송하며, 내가 지금 사른 향이, 나의 신심을 전하는 사자가 돼 일체세계의 삼보님께 공양을 올리겠노라 발원하는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 불교에서는 향을 살라 머리 위로 올리고 반배를 하고 나서 향로에 꽂고 헌향게송을 염송하며 보통 절을 시작하고 있다. 행위가 조금 달라지고 축약되었지만 절할 때 하는 순서와 의미 등은 다르지 않다고 하겠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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