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삼계(三界)에 대하여
세속에서 살아가는 우리는 대체로 인생이 무상하다거나 해탈열반에 이르는 길에 대한 가르침보다는 세속의 행복도 유지하고 다음 생에도 계속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는 가르침에 더 귀가 솔깃해집니다.
물론 재가자들 중에서도 찟따 장자 같은 사람들은 출가자 못지않게 수행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그는 스님들에게 법에 대해 묻거나 심지어는 법을 들려주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대부분 재가자는 다음 생에도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부처님은 불·법·승·계·보시·생천, 이 여섯 가지를 늘 잊지 말고 기억하면(六念) 그 과보로 즐거움을 누릴 수 있으니 즉 하늘에 태어나게 된다는 가르침을 아주 많이 들려줍니다.
욕계의 하늘에 대해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는 <정법념처경>에서는 “모든 즐거움이 모여 있기 때문에 하늘이라 이름한다”라고까지 정의합니다.
하늘은 즐거움이 가득 찬 곳이니 여전히 욕망을 끊지 못했지만 선량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바랄만 합니다. 따라서 초기경전에서 염천(念天) 즉 하늘을 생각하라는 가르침은 즐거움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욕계의 여섯 하늘을 가리킵니다.
선업 충실히 짓고 욕망까지 다스리며
치열한 참선으로 얻을 수 있는 ‘경지’
<대지도론> 제22권에서도 염천에 대해 처음에는 “하늘을 생각한다(念天)는 것은 사천왕천에서 시작해서 타화자재천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라고 정의내립니다. 욕계의 여섯 하늘을 생각하라는 말입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지난 시간에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대지도론에서는 또 이어서 이렇게 되묻습니다.
“세 가지 세계(三界)에는 청정한 하늘이 많다. 그런데 왜 욕계의 하늘만을 생각하라는 것인가?”
세 가지 세계란 욕계와 색계와 무색계로, 경전에서 ‘하늘’이라 말할 때는 욕계의 여섯 하늘을 포함해서 색계와 무색계까지도 가리킵니다. 하지만 색계와 무색계는 수행의 단계입니다. 그저 선업만으로 도달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서 있다는 것이지요. 선업을 충실하게 지을 뿐만 아니라 욕망까지도 다스려야 하며, 치밀하게 참선을 해야 얻을 수 있는 경지입니다.
그런데도 부처님은 사람들에게 욕계의 여섯 하늘에 태어나는 것을 주로 말씀하고 계시니 대지도론에서는 이것을 문제 삼고 있는 것입니다. 대지도론은 여기에 대해서 다시 이렇게 대답합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서 수행을 해나가는 성문들의 차원에서는 욕계의 하늘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지만, 대승에서는 삼계의 하늘을 생각하라고 말씀하셨다. 아직 도를 얻지 못한 사람들은 눈·귀·코·혀·몸을 보호하지 못하기 때문에 바깥 대상을 향해 집착을 내기도 한다. 부처님은 탐욕과 음란한 생각을 끊지 못한 이런 사람들을 위해서는 미묘하고도 깨끗한 즐거움이 있는 욕계의 하늘을 말한 것이다.”
그렇다면 탐욕과 음란한 생각을 끊은 수행자에게는 욕계의 하늘이 아닌, 색계와 무색계를 일러주신다는 것입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어서 네 가지 하늘을 말합니다.
첫째는 명천(名天)이니, 사람들이 한 나라의 왕을 가리켜 천자(天子)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둘째는 생천(生天)이니, 사천왕천에서 시작하여 욕계와 색계를 거쳐 무색계의 가장 높은 하늘인 비유상비무상천(非有想非無想天)을 말합니다. 셋째는 정천(淨天)이니, 사람들 가운데 성자들을 말하며, 넷째는 생정천(生淨天)이니 수다원에서 시작하여 위로는 아라한에 이르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대지도론에서 ‘하늘을 생각한다’는 말은, 생천과 생정천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번뇌를 버리고 떠나서 끝내 아라한이 되어 열반에 드는 것을 생각하는 일, 이것이 대승에서 말하는 염천(念天)이라는 것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