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덕은 법성에 있지 복밭에 있지 않다
평등은 중도연기요 곧음은 연기중도다
본문 : 使君禮拜 自言 和尙說法 實不思議 弟子嘗有少疑 欲問和尙 望和尙 大慈大悲 爲弟子說
大師言 有疑卽問 何須再三 使君問 可不是西國第 一組達磨祖師宗旨 大師言是 弟子見設 達磨大師化梁武帝 問達磨 朕一生已來 造寺布施供養 功德否
達磨答言 竝無功德 武帝惆悵 遂遣達磨 出境 未審此言 請和尙設 六組言 實無功德 使君 勿疑達磨大師言 武帝著邪道 不識正法 使君問 何以無功德 和尙言 造寺布施供養 只是修福 不可將福 以爲功德 功德在法身 非在於福田 自法性 有功德 見成是功 平直是德 內見佛性 外行恭敬 若輕一切人 吾我不斷 卽自無功德 自性虛妄 法身無功德 念念德行 平等直心 德卽不輕 常行於敬 自修身 卽功 自修心 卽德 功德 自心作 福與功德別 武帝不識正理 非祖大師有過
해석 : 위사군이 예배하고 스스로 말하였다. “대사께서 법을 설하심은 참으로 부사의하십니다. 제가 일찍이 조그마한 의심이 있어서 대사께 여쭙고자 하오니, 바라건대 대사께서는 대자대비로 제자를 위하여 말씀하여 주소서.”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의심이 있거든 물을지니, 어찌 두 번 세 번 물을 필요가 있겠는가.
위사군이 물었다. “대사께서 설하신 법은 서쪽 나라에서 오신 제1조 달마조사의 종지가 아닙니까.” 대사께서 말씀하셨다. “그렇다.” “제자가 듣자오니 달마대사께서 양무제를 교화하실 때, 양무제가 달마대사께 묻기를 ‘짐이 한 평생 동안 절을 짓고 보시를 하며 공양을 올렸는데 공덕이 있습니까?’라고 하자, 달마스님께서 ‘전혀 공덕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하시니, 양무제는 불쾌하게 여겨 마침내 달마대사를 나라 밖으로 내보냈다고 하는데 이 말을 잘 알지 못하겠습니다. 청하온데 대사께서는 말씀해 주십시오. “육조대사께서 말씀하시기를 “참으로 공덕이 없나니 사군은 달마대사의 말씀을 의심하지 말지니, 양무제가 삿된 길에 집착하여 바른 법을 모르는 것이니라.”
![]() | ||
위사군이 다시 묻기를 “어찌하여 공덕이 없습니까?” 육조대사가 말씀하시기를 “절을 짓고 보시하며 공양을 올리는 것은 다만 복을 닦는 것이니, 복을 공덕이라고 하지는 말아야 하며, 공덕은 법신에 있고 복밭에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법성(法性)에 공덕이 있나니, 견성(見性)이 곧 공(功)이요,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德)이니라. 안으로 불성(佛性)을 보고 밖으로는 공경할지니, 만약 사람들을 경멸하고 아상(我相)을 끊지 못하면 곧 스스로 공덕이 없고 자성은 허망하여 법신에 공덕이 없느니라. 생각마다 덕을 행하고 마음이 평등하여 곧으면 공덕이 곧 가볍지 않으니라. 그러므로 항상 남을 공경하고 스스로 몸을 닦는 것이 곧 공이요, 스스로 마음을 닦는 것이 곧 덕이니라. 공덕은 자기의 마음으로 짓는 것이니, 이같이 복과 공덕이 다르거늘 무제가 바른 이치를 알지 못한 것이요, 달마대사께서 허물이 있는 것이 아니니라.”
법문 : 공덕과 정토에 대해 육조가 말하는 부분이다. 육조는 공덕을 일러 ‘견성이 곧 공’이라고 했다. 견성은 청정구한 진성, 본성을 보는 것이다. 그 견성을 공이라고 했으며 평등하고 곧음이 곧 덕이라고 했다. 그러면 평등하고 곧음이 다른 것인가? 평등이 곧음이고 곧음이 평등이다. 평등은 중도연기이고 곧음은 연기중도이다. 평등이 왜 중도연기인가. 연기에서는 주종(主從)의 수직적 관계가 아니고 서로 관계성을 갖는 평행상태로 존재한다. 갑이 을에 의해 존재하고 을이 갑에 의해 존재하기 때문에 가치나 생명선은 서로 평등하다.
'설법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재식 하는 법 (0) | 2014.10.24 |
---|---|
[스크랩] 본래 속밖되어 있지 않다 (0) | 2014.10.24 |
[스크랩] 등을 밝히는 법 (0) | 2014.10.13 |
[스크랩]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요 (0) | 2014.10.13 |
[스크랩] 오분향 (0) | 2014.10.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