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회란 과거잘못 종신토록 짓지 않는 것
부처님이나 도인은 못 깨친 우리처럼
인과를 괴롭게 받지 않고 행복하게 받아
불교에서는 죄와 업을 어떻게 보는가? 어떻게 참회하는가? 이런 문제에 대해 불교 공부를 상당히 한 재가불자들도 혼돈스러워하는 것을 종종 본다. 지혜롭게 살려면, 참선을 잘 하려면 죄와 업, 참회에 대해서도 정견을 굳건히 세우고 행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화두 참구에 장애도 많고 행복하게 살기도 어렵다.
불자라면 누구나 문둥병을 앓다가 깨친 삼조 승찬대사 이야기를 안다. 승찬대사는 자기를 평생 괴롭힌 문둥병이 전생의 죄 때문이라 생각하다가 자성(自性)을 깨치고 보니, 자신이 본래 없고 죄도 착각이라는 것을 간파했다. 내가 본래 중도연기ㆍ무아ㆍ공인데, 있다는 양변에 집착하면 내가 있게 되고, 내가 있으니 죄업도 있고 전생도 있게 된다. 나와 내가 지은 업이 있으니 생사윤회를 피할 수가 없다. 나와 내 것이라는 것에 집착하는 사람, 내가 있다는 착각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불자는 생로병사의 괴로움을 벗어날 수가 없다. 이런 분들은 유아(有我)의 입장에서 불교를 믿어 오직 복(福)을 구하며 그 복 받기를 바랄 뿐이다.
중국 양나라 무제가 그런 분이다. 황제가 돼 2500여 사찰을 세웠으니 가히 인류 역사에서 최고의 불사 공덕을 지었으나, ‘나는 황제다, 내가 있다’는 양변에서 백성들의 혈세로 불사하니 도리어 그 과보를 받아 황제에서 쫓겨나 굶어죽었다.
중도연기ㆍ무아ㆍ공을 모르면 아무리 좋은 일, 훌륭한 불사를 하더라도 생사고해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반면에 삼조 승찬대사처럼 자신의 문둥병이 전생에 지은 죄업이라 생각하며 평생 괴롭게 살다가 조사를 만나 자성을 깨치니 생로병사에서 해탈해 영원한 자유를 성취했다.
죄와 업도 착각이다. 내가 본래 없다는 무아ㆍ공을 깨치면 죄업도 착각이라는 것을 알아 자유자재하다. 내가 본래 없는데, 죄업이 어디에 있는가? 업장은 어디에 있는가? 양변에 집착한 착각일 뿐이다. 이조 혜가와 삼조 승찬대사가 바로 이것을 깨쳐 영원한 자유에 이르렀고, 살인마 앙굴리마라가 999명의 사람을 죽이고도 부처님을 만나 깨쳤으며, 간화선을 정립한 대혜스님의 <서장>에도 백정이 깨친 이야기가 나온다.
그렇다면, 죄와 업이 본래 없으니 죄를 지어도 된다는 말인가? 그것은 아니다. 무아ㆍ공을 깨치지 못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더 큰 고통과 과보를 받는다. 부처님도 피할 수 없는 인과(因果)법이 있기 때문이다. 경전에 보면 부처님도 배탈이나 등창이 난 기록이 있는데 전생에 지은 사소한 실수로 과보를 받는 것이라 하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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깨달은 앙굴리마라와 백정도 살생의 과보는 반드시 받아야 한다. 다만, 부처님이나 도인은 못 깨친 우리처럼 인과를 괴롭게 받지 않고 행복하게 받는다. 그렇다면, 죄와 업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육조 스님은 무상(無相)참회를 말씀하신다.
“참회(懺悔)란 무엇인가? 참(懺)이란 몸이 다하도록 잘못을 짓지 않는 것이고, 회(悔)란 과거의 잘못을 아는 것이다.”
참회란 과거의 잘못을 알아 종신토록 짓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과거의 잘못이란 내가 본래 없는데 ‘있다’는 양변에 집착한 것을 말한다. 그래서 양변을 떠나 무아ㆍ공을 깨치는 것이 참회다. 그렇지 않고 내가 있다는 양변에서 참회를 하면 재범, 삼범 죄를 반복해서 영원히 생사고해를 헤매인다. 내가 본래 없다는 무아ㆍ공을 깨치는 견성을 하면 단박에 참회한다.
참선을 시작할 때도 내가 무아ㆍ공이라는 정견을 세우고 하면 분별망상도 쉽게 비워져 바로 화두 일념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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