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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초발심이 바로 여래심

처음 발심<發心>하는 순간이 곧 ‘여래심’

자리이타 실천행 통해 ‘깨달음’

어느 시골의 농부가 산에서 독수리 알을 주워 닭장 암탉에게 품게 했다. 암탉이 품은 알에서 독수리 새끼가 나왔다. 독수리 새끼는 병아리와 같이 살면서, 항상 자신은 병아리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닭장 밖으로 나온 병아리 무리 위에 황금빛 독수리가 맴돌고 있었다. 어미닭은 모든 병아리에게 닭장으로 숨으라고 고함을 지른다. 이때 독수리 새끼도 병아리와 같이 닭장으로 함께 들어가 숨는다. 만약에 어미닭이 독수리 새끼에게 너는 닭이 아니고, 본래 독수리라는 것을 깨우쳐 줬다면, 황금빛 독수리를 보는 순간 “나도 황금빛 독수리다”라고 외치면서 푸른 창공을 한 번 날아 올랐을 것이다.

이와 같은 이야기는 <열반경>에도 나온다. 소 잡는 도살자가 어느 날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들고 있는 칼을 놓으며 “나도 일천 부처 가운데 한 부처다”라고 했다. 또한 <법화경>에도 용녀(龍女)가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즉시 해탈하는 내용이 있다. <금강경>에서는 “중생이 중생이 아니고, 그 이름이 중생이다”라고 했다. 이러한 불성사상과 반야돈오사상은 대승경전 여러 곳에서 누누히 밝히고 있다.

조사선에서 말하는 본래성불사상도 대승경전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러므로 조사선에서 돈오견성을 주장하는 내용도, 참으로 어떤 것을 얻기 위한 것이라든지, 무엇을 닦아 구하는 것으로 해탈한다고 말하지 않는다. 본래 갖추어진 지혜를 돈오(頓悟)하면 영원한 해탈(解脫)이요, 다시는 미혹의 상태로 돌아가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러한 돈오법은 발심(發心)이 대단히 청정해야 한다. 밖으로 구함이 없고, 모든 현상은 연기적 관계에서 무생(無生)으로 보는 정견을 갖춘 무구무상(無求無相)의 깊은 발심이어야 한다. 정견을 갖춘 발심자가 아닐 때는 이 모든 돈오법이 욕심의 대상으로 추구하게 된다.

   
 

해탈은 욕심의 대상이 될 수 없는 것이다. 욕심을 비울 때 비우는 그 넓은 마음세계에 보살의 반야바라밀행이 펼쳐진다. 보살행은 마치 어둠에 헤매는 나그네에게 등불을 비춰줄 때 불빛은 자기 스스로를 먼저 비추고 남을 밝게 해주는 것과 같아서, 발심이 깨끗한 사람은 발심을 일으키는 그 순간 보현행자가 되어 자리이타(自利利他)를 행하는 것이다. 그래서 <화엄경>에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이라고 했다. 처음 발심하는 그 순간 자성여래를 친견하는 순간이요. 자성여래를 찬탄하고 예경하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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