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게도 어리석은 중생 모두가 여래의 지혜를 조금도 모자람이 없이 다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생은 자신 속에 여래 지혜가 있음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고 있구나! 여래는 중생을 진리로 가르쳐서 반드시 여래와 조금도 다름이 없는 거룩한 지혜가 있음을 깨닫게 하리라.
(奇哉奇哉 此諸衆生云何具有如來智慧 愚癡迷惑不知不見 我當敎以聖道 令其永離妄想執着 自於身中得見如來廣大智慧 與佛無異)”
부처님께서 사바세계에 오신 이유가 무엇일까를 묻는 질문에 <법화경> ‘방편품’에 설한 ‘개시오입불지지견(開示悟入佛之知見)’이 기본적으로 거론된다.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불의 지견을 모든 중생에게 열어 보이고 깨닫고 들어가게 하기 위해서 오셨다는 의미다. <화엄경>에서 이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면 단연코 ‘여래출현품(성기품)’이 거론된다. 앞서 소개한 구절이 ‘여래출현품’에 나오는 경문이다.
이 ‘여래출현품’의 경문은 어리석은 중생이 부처님의 말씀을 간절하게 믿고 여래의 길로 나아가면 반드시 여래의 성품을 발현(發現)해 모두가 여래 지혜를 갖추게 된다고 하는 가르침이다. 여래가 이 혼탁한 세상에 오신 절대 절명의 목적은 중생을 깨우쳐 부쳐가 되게 하려는 목적 외에는 그 아무것도 없다는 선언이기도 하다. 이 선언은 결국 모두가 부처가 된다는 불교의 신념이며, 중생이 부처가 되어야 세상은 구제된다고 하는 정언명령(定言命令)인 것이다.
중생을 향한 여래의 이러한 확신에 대해서 이번에는 중생이 여래께 대답을 보내야 한다. 중생이 여래께 보내는 대답은 자신이 곧 여래의 성품을 온전히 갖추고 있다고 하는 믿음이다. 이 믿음이야말로 중생이 여래와 만날 수 있는 통로가 된다. <화엄경>이 요구하는 믿음은 어떤 절대자를 믿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일체 지혜를 온전히 갖춘 여래성품이 그대로 있다는 것에 대한 믿음이다. 불교가 절대 유일신을 믿는 여타의 종교와 다른 점은 바로 여기에 있다. 구원을 받기 위하여 믿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 속에 이미 갖추고 있는 여래성품에 대한 확신이 곧 불교의 믿음이다.
여래가 중생 세계에 오신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여래와 중생이 근원적으로 동질이라는 깨우침이다. 밖으로 찾아 헤매는 것이 아니라 내면에 존재하는 자기불(自己佛)을 확인하는 믿음이다. 중생 자신이 여래성품을 간직하고 있음을 확신하고 여래로서 행위(佛行)하고 여래처럼 말(佛言)하며 여래의 마음(佛心)으로 모두를 대할 수 있을 때, 이 세계는 있는 그대로 여래의 정토가 되고 진정한 의미에서 모두가 구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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