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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반야의 지혜를 관조해라

 

무주상 보시가 반야바라밀 삶

선종역시 대승불교 사상 바탕

해석 : “선지식들이여, 또한 어떤 분이 사람들에게 ‘앉아서 마음을 관찰하고 깨끗함을 관찰하되 움직이지도 말고 일어나지도 말라’고 가르치고 이것으로써 공부를 삼게하는 것을 보나니.

미혹한 사람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문득 거기에 집착하여 전도(顚倒)됨이 수백 가지이니, 이렇게 도를 가르치는 것은 크게 잘못된 것임을 애써 알아야 하느니라.”

“선지식들이여, 정과 혜는 무엇과 같은가?

등불과 그 빛과 같으니라. 등불이 있으면 곧 빛이 있고 등불이 없으면 빛이 없으므로, 등불은 빛의 몸이요 빛은 등불의 작용이니.

이름은 비록 둘이나 몸은 둘이 아니니, 정과 혜의 법도 또한 이와 같으니라.”

 

해설 : <육조단경>에는 정혜일체(定慧一體) 사상이 중심이다. ‘정혜일체’ 사상은 정견(正見)과 돈법(頓法)이 무엇이냐를 밝혀준다.

<단경>에 나오는 정혜일체 사상은 계정혜(戒定慧) 삼학(三學)과 비유해 설명할 수 있다. 계정혜 삼학은 인도 전통 교학체계의 흐름을 반영하고 있다.

교상판석으로 정리할 때 계정혜를 나란히 평행선에 놓고 교학을 세운 것이다. 모든 악을 짓지 말라(諸惡莫作), 마음으로 모든 선을 닦고 행하라(衆善奉行)고 말하는 계정혜 삼학은 자정기심(自淨其心), 즉 스스로 마음을 깨끗이 하면 깨달음에 이른다는 것으로, 인도 전통 교학체계의 흐름이 반영된 것이다.

이렇게 계정혜를 나란히 평행선에 놓고 교학을 세우면서 각각 개체로 분리해 그대로 수행을 받아들인 것이 북방선이다. 실천수행 체계도 나란히 그러한 체계를 갖고 있다.

   
 

<육조단경>은 나란히 정돈된 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림으로써, 계정혜 삼학을 그 자체로서 정과 혜로 묶어 버렸고, 나아가 정혜를 하나로 만들었다.

육조 스님은 정과 혜를 “다르다고 말하지 마라”고 말했다. 그런 육조의 말은 계정혜 삼학 전통에서, 기존에 교학 철학을 관념으로 알고 있는 것을, 체험과 체득으로 모든 것은 심성 바탕 하나에서 솟아 나오는 것이기에 실천할 수 있게 단순화했다. 육조 스님은 생활 속에 그대로 실행할 수 있게 정과 혜를 묶었다.

정과 혜에서 정은 교학적으로 공공적적(空空寂寂)한 자리이다. 공공적적한 자리에서 공이 갖고 있는 기능으로 공능이 있고, 그 기능에서 반야가 나온다. 구름이 걷히면 공공적적이다. 구름이 걷히면 자연히 해가 나온다. 경전을 볼 때 구름이 걷혀야 한다. 육조 스님이 ‘반야로서 관하라’는 말은 반야바라밀의 삶을 살라는 의미이다. <금강경>에서 말하는 무주상 보시의 보살도의 정신이 그런 반야바라밀의 삶이다.

부처님의 대승불교 사상을 바탕으로 선종이 이루어진 것이고, 대승보살도의 사상에서 반야가 나오면 반야의 작용은 보살도로 가는 것이 당연하다.

정혜를 보는 것을 교학적으로 풀어서 공공적적이라 할 때, <금강경>에서 말한 사구게 ‘범소유상 개시허망(凡所有相 皆是虛妄)’ 을 공공적적으로 말한 것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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