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고 멈추고 중심 잡게 하고
수행자는 일심으로 구해야해
불교를 가리켜 마음공부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이때 생각해봐야 할 것이 두 가지 있습니다. 마음을 배우는 것이 마음공부인가 그렇지 않으면 마음을 공부시키는 것이 마음공부인가 하는 것입니다. 답은 후자입니다. 마음을 공부시켜야 하는 것입니다.
마음은 잘나지 않았습니다. 마음은 길들여야 합니다. 그렇지만 우리를 좌지우지하는 것이 마음입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 이렇게 말할 정도로 마음이 내게 미치는 힘은 강력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마음에게 휘둘리기만 하지는 않습니다. 마음이란 녀석이 ‘이렇게 할까, 저렇게 할까’하고 고민하는 순간을 우리는 깨닫고 있기 때문입니다. 망설이고 선택하려고 고민하는 바로 그 순간에 마음의 존재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뭘 할까 마음이 망설이는 순간에 바로 그 마음에 명령을 내리는 무엇인가가 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왜 그렇게 했는가’라고 남에게 비난을 받을 때 우리는 말합니다. “내 맘이야. 간섭하지 마!”
마음보다 더 깊은 곳에 있는 무엇인가가 자기 마음이 타인에게 비난받는 것을 불쾌하게 생각해서 얼른 수를 씁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을 자세히 살펴보자면, 우리는 마음을 잠시 떨어뜨릴 수도 있습니다. 마음조차도 내 관찰이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초기불교에서 그토록 강조하는 사념처(四念處)라는 수행법에서는 ‘마음’이 관찰의 세 번째 대상으로 등장합니다.
마음을 잠시 나로부터 떼어내서, 즉 거리를 두고서 마음을 바라보자면 마음이란 녀석의 정체가 드러납니다. <대지도론> 제17권에서는 그런 녀석의 정체를 다음과 같이 비유하기 때문입니다.
“어지럽게 이리저리 나부끼기로는 기러기 털보다 가볍고, 쉬지 않고 내달리고 흩어지기로는 빨리 지나는 바람 같고, 제지하기 어렵기로는 원숭이보다 더 하고, 잠깐 나타났다 순식간에 사라지기로는 번개보다 더 빠른 것이 마음이다.”
그러니 우리는 이런 정신 사나운 녀석을 모두 하나씩 담고서 지금껏 살아온 것이지요. 이제 우리는 갈림길에 서게 됐습니다.
마음을 그냥 내버려둘 것이냐, 마음을 길들일 것이냐. 무엇을 선택하건 각자의 자유입니다. 그야말로 뭘 선택하건 그건 그 사람 마음이란 말입니다. 그런데 수행을 좀 하겠다고 결심한 사람이라면 후자를 택해야 합니다. 그리고 천방지축 날뛰는 마음을 길들이는 길은 바로 참선이라고 불교에서는 말합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선정이란 모든 산란한 마음을 쉬는 것이다.”
마음을 쉬게 하고 마음을 멈추게 하고 마음을 중심 잡게 하는 것이 선정이기 때문에 <대지도론>에서는 선정에 대한 찬미도 이어집니다.
“선정은 지혜를 지키는 창고요, 공덕을 지닌 복전이다. 선정은 맑고 깨끗한 물이어서 온갖 더러운 욕망을 씻어준다. 선정은 금강으로 만든 투구여서 번뇌의 화살을 막아주니/ 무여열반을 얻지 못해도 열반의 기분을 맛볼 수 있다.”
새털이나 원숭이, 바람, 번개보다 더 정신없고 재빠른 마음을 잘 붙잡고 길들이는 것이 선정인 만큼 선정을 얻기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참선이란 게 하고 싶다고 해서 저절로 되는 게 아닙니다. 애를 써야만 할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합니다. 참선이 쉽지 않다는 사실을 <대지도론> 제17권에서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선정은 얻기 어려우니 수행자는 일심으로 구해야만 얻을 수 있다. 천상의 신이나 세속을 떠나 유행하는 사람들(仙人)도 쉽게 얻지 못하는 것이 선정이다. 하물며 세속에서 온갖 쾌락에 젖어 지내는 게으른 범부에게 선정이 쉬운 일이겠는가.”
'설법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깨달음의 대화 (0) | 2013.12.08 |
---|---|
[스크랩] 마음을 돌이킨 그 자리가 정토요, 극락이다 (0) | 2013.12.08 |
[스크랩] 반야의 지혜를 관조해라 (0) | 2013.11.26 |
[스크랩] 선정과 지혜는 곳 하나이다 집착과 차별하지 말라 (0) | 2013.11.19 |
[스크랩] 정근으로 번뇌를 끊자 (0) | 2013.11.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