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혹한 생각 매이고 잘잘못 따지며
상투적 격식에 빠져 알음알이 지어
다함없는 시간을 지낸다 해도 그저 한결같을 뿐이니(如如), 하물며 모든 인연이야 말할 필요가 있겠느냐. 여기 머무는 가운데 바야흐로 가풍을 세워 남들의 못과 쐐기를 뽑아주며 그들의 집착을 없애줄 수 있으니, 바로 이것을 일대사인연(一大事因緣)이라고 한다.
우주 만물이 만들어지고 변하고 없어지더라도 마음은 일찍이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으며, 온갖 인연이 천차만별로 변한다 하더라도 성품은 늘 여여부동하다.
성품을 계합한 후에 오래 익으면, 자연스럽게 방편지가 열리게 된다. 그때는 가풍을 세워 인연 있는 사람들의 전도몽상을 바로잡아서, 그들의 오래된 집착과 분별망상을 타파해주어야 한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히 일대사인연을 위해 사바세계에 나투신 것이다.
여래가 간직하신 비밀스런 말씀을 가섭이 감추지 않았으니, 이것이 바로 여래의 진실한 밀어(密語)이다.
마음은 온 천하에 환히 드러나 있건만, 다만 중생 스스로 무명업식에 가려 분별망상의 고해 속을 헤매고 있다.
그래서 여래의 밀어를 ‘공개된 비밀’이라고 하는 것이다. 중생이 스스로 마음의 눈을 뜨지 못해서 알지 못하는 것이지, 실제 본분사는 훤칠하게 드러난 이 일 외에 또 다른 일이란 있을 수 없다.
확연히 드러난 이 일을 알고 모르고 관계없이 누구나 쓰고 있지만, 깨달음을 눈 열어야 비로소 자기 모양을 바꿀 수 있는 힘이 생긴다. 그렇지 못하면, 자기도 모르는 어리석음에 빠져서 끝없이 다른 몸을 받게 되어 있다.
감추지 않은 그것이 곧 은밀함이며 은밀한 그대로가 감추지 않음이니, 이를 어찌 미혹한 생각에 매이고 잘잘못을 따지며, 상투적인 격식에 빠져 알음알이를 짓는 자와 함께 거론할 수 있으랴!
자성(自性)은 본래 누구나 온전히 갖추고 있어서, 스승과 제자 간에 주고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사자상승(師資相承) 한다.’고 하는 것이다.
하지만 도대체 무엇을 가지고 이런 말을 하는지 몸소 체득하지 못한 사람은, 여기서 의문을 일으켜 진정으로 발심해야 할 것이다. 시절인연을 만나 의단이 타파되고 성품과 계합할 때, 비로소 ‘은밀함은 곧 드러날 것이고, 드러남이 곧 은밀함’이라는 말의 낙처를 알 수 있을 것이다.
투철히 벗어나 실제로 깨달은 경지에 도달하려면 격식에서 벗어나고 종지를 초월한 맨 꼭대기에서 알아차려야 할 것이다. 깨닫고 나서는 잘 간직했다가 상근기를 만나거든 그때 가서 인가해줄 일이다.
제자가 이와 같이 일련의 일에 대해서 자각을 했다면, 스승의 입장에서는 매우 기쁠 것이다. 그래서 원오스님은 여기서 제자인 불지스님에게, “그대가 공부한 것이 그런 것이니까 함부로 쓰지 말고 때에 당해서 언제든 펼쳐 보이되, 상근기가 아니면 인가해주지 마라”고 은근히 부촉해주고 있는 것이다.
불자를 들고서 법좌에 올라 종사라 불리면서도 본분작가(本分作家)의 수단이 없다면, 사방에서 찾아오는 사람을 속여 그들을 풀밭 구덩이 속으로 끌어들여 자질구레한 물건으로 만들어버리는 꼴을 면치 못하리라.
본분작가의 수단이란, 법을 물어오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돈오할 수 있는 장치를 시설해주는 것이다. 상대의 눈치를 보지 말고 사정없이 내질러서, 공부가 ‘되냐, 안 되냐’에만 뜻을 두고 확 뒤바꿀 수 있는 방법을 거침없이 베풀어야 되는 것이다.
상대의 알음알이는 모조리 빼앗아버리고, 때로는 아주 뾰족하고 날카로운 창으로 사정없이 가슴을 찔러서, 오직 환골탈퇴 시키는데 주안점을 두는 용맹스러운 기운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상대의 업이 벗겨지면서, 뭔가 변화될 수 있는 입장에 근접할 수 있는 것이다.
조사선 시대의 전형적인 이 수단은 간화선 시대가 되면서, 제자에게 화두를 참구하는 간화(看話) 장치를 시설해주는 것으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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