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람들이 처처(處處)에 욕심 부리는 것을 구(求)라고 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참됨을 깨닫고, 진리로서 세속적인 것을 멀리하고, 마음을 무위(無爲)에 두며, 몸을 흐름에 맡긴다. 만유(萬有)는 공(空)이니, 구하는 것이 없는 것이 낙(樂)이다 … 공덕천과 흑암녀가 붙어 다니며 서로 서로를 따른다. 3계에 오래 머물러 있는데, 이곳은 마치 불난 집과 같다. 육신 자체가 고통이거늘 누가 이곳에서 편할 수 있으랴. 그러니 모든 것에 생각을 쉬고 구하지 말라. 경전에 ‘구함이 있으면 고통이요, 구함이 없으면 낙’이라고 하였다. 구함이 없는 것이 바로 도를 실천하는 길임을 분명히 알지니라.”
여기서 말하는 ‘구함’이라는 것은 바로 과도한 집착심을 말한다. 집착하지 말라는 것은 공사상, 반야사상이 담겨 있는 대승심을 의미한다. 그래서 달마와 양무제가 대화를 할 때, 양무제가 ‘자신은 공덕을 많이 지었는데, 어떤 과보가 있느냐?’는 질문에 달마는 ‘관념을 두고 보시하거나 공덕 지음에 집착한다면 이익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한 것이다.
이 사상을 단적으로 잘 표현해놓은 것이 <금강경>으로, 바로 무주상(無住相)이다. 즉 집착심이나 관념, 분별심(住相)을 갖지 말고, 6바라밀을 실천하라는 것이다. <금감경>에서는 바라는 것 없이 보시하라는 무주상보시(無住相布施)만을 언급하고 있지만, 무주상지계·무주상인욕 등 6바라밀을 함축하고 있다.
무주상정진으로 보자. 정진하면서 번뇌를 떨쳐야 한다는 생각도 갖지 말고, 반드시 해탈해야 한다는 강한 욕망까지 쉬어야 하는 법이다. 구심훨즉무사(求心歇卽無事)라고, 구하려는 마음을 쉬는 것이 곧 무사이다. 구하려고 하면 할수록 점점 더 멀어지는 법이다. 그러니 번뇌를 배척하거나 해탈 추구도 없는 무심(無心)함을 말한다.
<유마경>에서는 법을 구하는 사람은 일체법에 무언가 구하지 말라고 하였고, 임제는 구하는 마음이 없는 것이 무사(無事)라고 하였다. 우리 일상의 인생살이도 마찬가지이다. 세상에 벌어지는 일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 무구(無求)요, 무주(無住)요, 무심(無心)이다. 삶에서 벌어지는 그대로 느끼고 받아들이되 그것에 집착하지 않는 것이다. 즉 추우면 추운대로 더우면 더운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어찌 삶이 내 마음대로 되겠는가? 내가 원치 않은 사람과도 만나야 하는 법이요, 벌어지는 일 또한 내가 원치 않는 방향으로만 나아가려고 한다. 만나는 인연에 거부표시를 해봐야 자신만 고달픈 것이요, 벌어지는 사건에 반항해봐야 자신만 힘겨운 법이다. 그러니 삶에서 벌어지는 것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스스로의 마음에 역심(逆心)을 품지 않아야 한다. 바로 이것이 달마가 말한 무소구행이라고 본다. 명나라 말기 유학자 육상객은 이런 말을 하였다.
“초연한 마음가짐을 유지하고, 사람을 대함에도 초연하며 … 성공했을 때는 담담하고, 실패할지라도 태연하라(自處超然 處人超然. … 得意澹然 失意泰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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