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재하는 바가 없는데 무엇을 추구하나
수행법은 ‘종합세트’, 상황 맞게 실천
본문: 셋째,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무엇인가. 세상 사람들이 오래도록 미혹하여 곳곳에서 탐내고 집착하여 명리를 구하느니라. 지혜로운 사람은 진리를 깨달아서 세속에 처해서도 마음을 돌이켜 마음을 편안히 하여 조작이 없고 형상의 인연 따라 변화하며 만유가 공성이므로 바라고 즐기는 것도 없다. 공덕과 흑암이 항상 서로 따라다니므로 삼계에 오래 머무는 것은 오히려 불난 집과 같으니 몸이 있는 것이 모두 괴로움인데 누가 편안함을 얻으리오. 이러한 이치를 분명히 깨달았으므로 모든 현상에서 망상이 그쳐 구함이 없느니라. 경(經)에 말씀하시기를 “구함이 있는 것은 모두 괴로움이요 구함이 없는 것이 곧 즐거움이다”라고 하셨으니 판단하건데 구함이 없는 것이 진실로 도를 수행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느니라.
해설: 무소구행(無所求行)이란 구함이 없는 수행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욕망과 집착의 대상과 조건을 구한다. 이유는 나와 내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대상들이 실제로 존재한다고 집착하기 때문에 그 대상들을 구해 욕망과 집착을 충족시키려 하는 것이다.
그러나 구하려는 나도 느끼려는 육신도 필요한 대상도 실체하지 않는 참나에 비친 업식이다. 오히려 실체하지 않는 대상을 구하니 구하는 마음, 구하는 행위가 새로운 업식을 만들어 끝없는 생사윤회의 허상을 만들 뿐이다. 지금 이 순간 업식의 환영임을 알아 구하는 마음을 쉬면 업식이 더 이상 만들어지지 않고 업식이 멈추면 생사 또한 멈추게 된다.
본문: 네 번째, 칭법행(稱法行)이란 무엇인가? 성품의 청정한 이치를 지목하여 법이라고 한다. 이치는 모든 형상이 다 공하여 더러움도 없고 집착도 없으며 이것도 없고 저것도 없다. 경에 말하기를 “법에는 중생이 없으니 중생의 허물을 벗어났기 때문이다”라고 하셨느니라. 지혜로운 자가 있어 만일 이 도리를 능히 믿고 이해할 수 있으면 응당 법에 걸 맞는 수행이라고 말하느니라. 법의 자체는 간탐이 없다. 몸과 생명과 재물로써 보시를 하여 베풀되 마음에 아깝고 애석한 것이 없으며 세 가지 해탈법(공해탈, 무상해탈, 무원해탈)에 이해 요달하여 의지하거나 집착하지 않으며 다만 허물을 제거하기 위하여 중생들을 교화하되 상을 취하지 않느니라. 이것은 자신도 이롭고 또한 타인도 이롭게 하는 것이니 역시 깨달음의 도를 장엄하는 것이니 보시가 이미 이와 같으니 나머지 다섯 가지 바라밀 또한 마찬가지다. 망상을 제거하기 위하여 육바라밀을 수행하지만 머무름이 없으니 이것이 바로 법에 부합하는 수행이니라.
해설: 칭법행(稱法行)이란 법다운 여법한 행이라는 말이다. 여기에서 법이란 법의 근본 성품인 법성 즉 참나를 말하며 참나의 성품에 비추어 행하는 것을 말한다. 무엇이 참나의 성품으로 비추어 봄인가? 참나는 텅 비어 있는 공의 성품과 무엇이든 비추어 아는 원조각상의 특성을 지니고 있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이 모든 것은 참나에 비친 현재 이전의 신, 구, 의 삼업을 통해 기억된 마음의 흔적(업식)의 모습이다. 업식은 실체하지 않는 정보일 뿐이다. 오온, 육근, 육경, 육식, 칠대가 모두 참나에 비친 업식의 허상을 느끼고 분별하고 알고 기억하는 과정이요 분류항목이다. 시간과 공간 또한 업식의 분류 방식이다. 보다 쉽게 빠르고 정확하게 자신이 구하는 대상을 찾기 위한 방편일 뿐이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의 근원인 ‘참나’가 공하니 모두가 텅 빈 허상일 뿐이다. 매 순간 참나의 텅 빈 성품을 통해 모두가 허상임을 일깨워 주는 것이다.
두 번째는 비추어 아는 참나의 성품이다. 자신이 원하는 대상(업식)을 비추어 알게 한다. 참나가 업식을 비추는 이유는 그 업식을 정화하여 청정한 자성인 참나로 되돌아가려는 참나의 성품인 것이다. 이것이 중생들이 행복을 느끼고 더 나은 행복을 찾아감이요, 제불보살의 원력과 자비행의 모습이다. 이 삶을 순간순간 참나의 공성과 자비로 비추어 살아가는 것이다. 이것이 칭법행이다. 사실 수행이란 이입(理入)이나 사행(四行, 보원행 수연행 무소구행 칭법행) 중 어느 것 하나를 선택해서 수행하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 경계에 따라 가장 적합한 방편을 실천하는 것이다. 이 모두가 하나요 하나가 모두이다. 근본은 참나의 성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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