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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참 나에 대하여

 

버리거나 구하지 말고 참나 찾아라

참나는 ‘공적(空寂)’, 비추는 것들은 ‘허상’ 

본문: 마음을 녹여 청정하고자하나 만일 마음을 조금이라도 일으키면 그것은 생멸하는 것이니 그 가운데 생각으로는 삿된 업을 지으며 진리를 구한다. 하지만 업을 생각하는 것이 쉬지 않고 점점 허물이 증가하면 마음은 구경을 얻기가 어렵느니라. 지혜인이 잠깐 동안 ‘직지인심 견성성불’ 여덟 자를 듣고 즉시 이치를 깨달으면 비로소 6년 고행을 알게 될 것이니라. 세간의 시끄러운 것은 모두 다, 마의 백성이니 다만 스스로 떠들썩하고 헛되이 다투며 허망하게 이해하여 중생을 교화한다하니 입으로는 처방을 말하지만 질병을 고치지 못하느니라.

해설: 구경열반(究竟涅槃), 즉 깨달음이란 ‘참나(진여 자성)’를 깨닫는 것이다. ‘참나’란 행(行), 주(住), 좌(坐), 와(臥), 어(語), 묵(默), 동(動), 정(靜)에 견(見), 문(聞), 각(覺), 지(知)하는 주체를 말한다. 우리는 매순간 ‘참나’의 작용에 의해 살아가지만 주인공인 참나 보다 ‘참나’에 비춰진 대상에 집착한다. 일체 모든 대상은 육근으로 말미암아 알게 되고 육근은 몸에서 기인하고 몸의 주인은 마음이다. 마음은 ‘참나’에 비친 나라는 업식과 나(아상)를 통해 비친 모든 업식이다. 즉 삼라만상 일체의 주인공은 ‘참나’인 것이다. 이 ‘참나’를 찾아가는 것이 수행이요 성불이다. 이것이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다. 어리석은 중생들이 수행을 한다고 하며 과거의 업식을 소멸하고 새로운 업식을 지으니 고통을 버리고 즐거움의 업식, 악을 버리고 선의 업식, 어둠을 버리고 밝음의 업식을 짓고 있으니 참으로 어리석은 일이다. 환영을 지우려고 새로운 환영을 만들 뿐이다. 중생들이 매순간 행하는 모든 것들은 참다운 행복(깨달음)을 찾고자 하나 생사윤회고의 원인을 만들 뿐이다. 참다운 수행은 매순간 대상을 견, 문, 각, 지 하는 주체를 찾아 들어가면 되는 것이다. 본래 존재하지도 않는 환영을 얻거나 제거하려고 이 삶을 낭비하지 마라.

본문: 실체가 없어 적적하여 옛날부터 본래 형상이 없거늘 어찌 선악, 정사 등이 있겠는가. 생이라고 말하나 생은 본래 생겨남이 아니요 멸이라고 하나 멸이란 본래 없어지는 것이 아니니라. 또한 움직임은 움직임이 아니요 고요함은 고요함이 아니니 그림자는 형상으로 인하여 일어난 것이며 메아리는 소리로부터 온 것이니라. 그림자를 눌러서 형상을 부리려고 하지만 형상이 바로 그림자의 근본임을 알지 못하고 소리를 날려서 메아리를 그치게 하려고 하지만 소리가 바로 메아리의 근본임을 알지 못하느리라. 번뇌를 제거하여 열반을 구한다는 것은 비유하면 마치 형상을 버리고 그림자를 찾는 것과 같으며 중생을 버리고 부처를 구한다는 것은 비유하면 소리를 지르지 않고 메아리를 찾으려는 것과 같느리라. 따라서 미혹과 깨달음은 하나요 어리석음과 지혜는 별개가 아니니라.

해설: ‘참나’는 본래 텅 비어 공적하다. 공적한 가운데 끊임없이 순간순간 집착한 대상들을 비추어 나타나고 알게 한다. 우리가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모든 것은 ‘참나’에 비친 허상(정보, 업식)들이다. 마치 텅 비어 있는 스크린에 영화가 상영이 되면 그 내용에 따라 선과 악, 정(正)과 사(邪), 과거와 현재, 미래, 시간과 공간, 행복과 불행이 나누어지는 것과 같다. 이 모든 분별심들은 ‘참나’에 비친 허상의 내용일 뿐 ‘참나’와는 무관하다. 태어남은 업식을 집착하여 환영이 비침이요, 사라짐은 집착이 사라지거나 옮겨가서 업식의 환영이 사라지는 것일뿐. ‘참나’는 태어남은 태어남으로 비추고 사라짐은 사라짐을 비추어 알뿐이다. 움직임도 고요함도 또한 매한가지이다. ‘참나’에 환영이 비치고 그 환영을 분별하여 좋아하고 싫어하고, 구하고 버리려하니 환영에 환영을 만들어가 끊임없이 이어지니 이것이 생사윤회이다.

이 모든 것의 근본은 ‘참나’에 비친 ‘나’가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것들을 구하기 때문이다. 이것이 집착이다. 그런데 ‘참나’를 깨달아 생사해탈 열반을 얻고자 하는 사람이 열반을 구하고 부처를, 불국토를 구한다면 그 구하는 환영은 비추어 나타날지언정 참된 열반과 성불은 아니다. 올바른 수행은 버리거나 구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 욕망과 집착을 버리거나 구하려는 마음의 근본 성품인 ‘참나’를 찾아가는 것이다. 지혜와 어리석음, 중생과 부처의 본질은 하나이다. 분별하여 구하면 영원히 해탈할 수 없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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