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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스크랩] 정법은 바른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본문: 마음은 색이 아닌고로 색에 속하지 않으며 마음은 색이 아닌 것도 아닌고로 색이 아닌 것에도 속하지 않느리라. 마음이 소속됨이 없는 것이 바로 해탈이니라.

만약 금계를 범했을 시, 두려움이 일어나지만 단지 두려운 마음은 얻을 수 없다는 것을 안다면 역시 해탈을 얻은 것이니라. 또한 하늘에 태어나는 것도 불가득이며 모름지기 공을 알지만 공 역시 얻을 수 없으며 얻을 수 없는 것을 알지만 얻을 수 없는 것도 역시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해설: 색과 공, 안과 밖, 소속과 이탈, 얻음과 얻지 못함, 이 모두는 ‘참나’에 비친 업식에 대한 분별망상일 뿐이다. 참나에 비친 물질이라는 상(이미지), 공이라는 상, 안이라는 이미지, 밖이라는 이미지(상) 등 모두가 참나에 비친 이름과 이미지 일 뿐이다.

참나는 그 어디에도 본래 속하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가 견문각지, 듣고 보고 알고 느끼는 삼라만상 모두가 참나에 속해있다고 할 수 있다. 마치 모든 영화의 내용과 화면이 스크린에 속해있듯이 말이다.

◼ 달마사행론 - 16. 바른 마음에 대한 집착의 병을 제거하여 바꾸는 문

본문: 만일 마음에 귀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천한 것이 있게 되느니라. 만일 마음에 옳게 여기는 것이 있으면 반드시 그른 것이 있게 되느니라. 이 마음이 만일 한 개의 물건을 좋게 여기면 일체 물건이 좋지 않은 것이니라.

마음에 만약 일개물을 친하게 여기면 일체물을 원수처럼 여길 것이니라. 마음이 색에 머물지 아니하면 색이 아닌 것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마음이 머무는 것에도 머물지 아니하면 역시 머물지 않는 것에도 머물지 않느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 내 마음의 환영이니

집착 버리고 근본성품 찾는 것이 정법

해설: 이는 마음이 지닌 집착의 특성을 설하고 있다. 우리의 집착은 언제나 긍정과 부정, 옳음과 부정, 좋아함과 싫어함, 귀함과 천함 등 집착함과 집착하지 않음, 머무름과 머무르지 않음 등등의 상반된 모습을 지니고 있다.

무엇인가 귀중한 것에 집착하면 자연히 그 귀중한 대상외의 모든 것은 귀중하지 않다는 집착을 하게 된다. 만약 어느 것이 옳다고 집착하면 나머지는 틀린 것이라는 집착이 되며 어느 것이 좋다라고 집착하면 나머지는 좋지 않다라는 집착이 된다.

수행자가 바른 법에 집착하면 바른 법외의 모든 법이 바르지 않다라고 집착한다. 집착함이 구함을 만들고 구함이 욕망과 집착을 만들어 신구의 삼업에 의한 업식을 지어간다. 그 업식이 참나에 비쳐 우리가 지금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삼라만상이 된다.

정법이란 집착을 버리고 집착하지 않음을 구하거나 비법을 버리고 바른 법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모든 것이 내 마음의 환영임을 알아 집착을 내려놓고 이 환영들의 근본성품인 참나를 찾아들어가는 것이다.

본문: 만일 마음에 지어가는 것이 있다면 이것이 바로 속박됨이니라. 마음이 만일 법을 중히 여긴다면 이것을 얻음에 법이 머무느니라. 마음이 만일 하나의 법이라도 존귀하게 여긴다면 마음은 반드시 비천하게 여기는 것이 있게 되며 만약 경론의 의미를 취할 때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 있게 되느니라.

단지 마음이 이해하는 곳을 있게 하려하면 즉시 마음은 구속되느니라. 마음이 구속되면 이것이 얽히고 속박됨이다. 경(經)에 말하시되 상, 중, 하법이 아니어야 열반을 얻는다고 하셨느니라.

해설: 우리가 하고자하는 마음으로 무엇을 행한다면 그것이 곧 집착이요 생사윤회의 속박이다. 하고자 한다는 것은 나와 내 마음(의도), 행위, 대상이 실체한다고 확신하는 것이니 생사의 모습인 것이다. 또한 어느 한 법을 귀중히 여긴다면 마음은 그것을 얻는 것에 집착하게 되고 나머지는 별로 귀중하지 않다라는 분별심을 갖게 된다.

분별심 역시 나와 내 마음, 분별의 대상, 선택, 행위 등이 존재한다 여기니 또한 생사의 원인이 되는 것이다. 이러한 마음으로는 부처님법의 진실한 의미를 알 수 없으며 이해한다 하더라도 자신의 사량분별에 지나지 않는다.

부처님 법의 바른 의미는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참나에 비친 내 마음의 업식의 환영이니 그 환영을 분별하거나 얻으려 하거나 이해하거나 기억하거나 이 모두가 또한 환영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환영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이 모두를 비추어 아는 참나를 깨닫는 것이 삼세제불 모든 법의 올바른 뜻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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