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지도론> 제22권에는 계(戒)에 대한 설명이 자세합니다. 그런데 계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말합니다. 유루계(有漏戒)와 무루계(無漏戒)입니다. 얼핏 보아도 유루계는 아직 뭔가 미진한 것 같고, 무루계가 더 차원이 높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지혜로운 사람도 무루계를 찬탄한다”라고 하고 있으니 이런 짐작이 틀리지는 않았습니다.
이 가운데 유루계에 다시 두 가지가 있으니 율의계와 정공계입니다. 그렇다면 다시 계에는 세 가지가 있게 됩니다. 율의계와 정공계와 무루계입니다. 대지도론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종교적인 삶을 살아가는 사람은 처음에는 이 세 가지 계를 언제나 생각해야 하며, 이 세 가지 계를 잘 배우고 나면 무루계만을 생각해야 한다.”
무루계가 가장 중요하지만, 초심자는 율의계와 정공계도 반드시 익히고 염두에 둬야 한다는 걸 기억해야 합니다.
율의계란 대체 무엇일까요? 율의(律儀)라는 말 자체가 엄격한 분위기를 풍깁니다. 과연 그렇습니다. “율의계란, 그 어떤 악도 제 마음대로 하지 못하게 하고, 온갖 악을 바싹 말려서 썩어 없어지게 하며 굴복시키는 것이다”라고 대지도론에서는 설명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 그대로 마음에 사악한 것이 스며들지 않도록 늘 마음을 단속하고 행동거지를 철저하게 하여 조금이라도 악한 것이 자리 잡지 못하도록 할 뿐만 아니라, 행여 마음속에 사악함이 스며들었다 해도 굴복시키는 것입니다. 어쩌면 계에 대한 가장 원론적인 해석이라 할 수 있습니다. 계는 행동을 단속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을 반듯하고 즐겁게 해주고
더 나아가 지혜롭게 해주기 때문
정공계는 선정(定)과 함께 하는(共) 계라는 뜻에서, 선정계(禪定戒)라고도 합니다. “능히 모든 번뇌를 막으니, 선정은 내적인 즐거움을 얻기 때문에 세간의 즐거움을 구하지 않게 되기 때문이다”라고 대지도론에서는 말하고 있습니다. 선정에 들어가는 것도 계를 지키는 일이라는 말이 됩니다.
선정이란 가히 그 어떤 말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은 경지이지만, 초기경전인 <니까야>에서 4선정을 설명하는 내용을 보면 그 단계 하나하나가 지극한 즐거움으로 표현됩니다. 선정은 그 자체가 맑고 깨끗한 기쁨과 즐거움, 담백한 행복의 경지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이런 선정의 경지에서 맛보는 즐거움이 워낙 크기 때문에 선(禪)을 수행하는 사람은 바깥세상 사람들이 추구하는 쾌락 같은 건 안중에도 없습니다. 사실 우리가 자칫 방종한 삶으로 빠져서 그릇된 행동을 하고 번뇌에 시달리게 되는 이유는 쾌락을 절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선정이 주는 즐거움은 그런 쾌락보다 훨씬 높은 차원의 즐거움이면서도 사람을 파계하게 만들지 않으니 이런 즐거움을 놔두고 세속의 쾌락을 추구하는 것이 바로 어리석음이라 할 것입니다.
율의계와 정공계가 유루계라면, 그보다 차원 높은 무루계도 있습니다. 대지도론 제22권에는 “무루계는 능히 모든 악과 번뇌의 근본을 뽑아버린다. 지혜로운 사람이라면 이 세 가지 계 가운데 무루계를 찬탄하니, 깨지지 않고 부서지지 않아서 이 무루계에 의지하여 참다운 지혜를 얻기 때문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계를 지키고 늘 계를 생각하는 일은 지혜와 이어지고 있다는 것 또한 유추할 수 있습니다. 계를 지키는 그 자체에서 멈추는 게 아닙니다. 지혜를 불러오지 않으면 계를 지켜야 할 이유가 참으로 약합니다.
“착하고 바르게 살자!”
세상은 이렇게 외칩니다. 이 말을 불교적으로 말하자면 “오계를 잘 지키고 살자!”가 됩니다. “왜 그래야 하는데?”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그게 당신을 반듯하게 해주고, 즐겁게 해주고, 나아가 지혜롭게 해주기 때문”이라고 답하는 것이 불교적 지계관(持戒觀)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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