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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구하려고 벗어나려고도 하지 말라

 

본문: 묻기를, 대도는 가깝다고 할 수 있습니까, 멀다고 할 수 있습니까? 답하기를, 비유하면 마치 아지랑이와 같아서 가깝지도 않고 멀지도 않느니라. 거울 속의 얼굴 모습과 같아서 역시 멀리 있는 것도 아니고 가까이 있는 것도 아니니라.

허공, 랑당, 침화 등과 같아서 가까운 것도 아니고 먼 곳도 아니니라. 만일 가까이 있다고 말할진댄 시방세계에서 구하여도 구할 수 없으며 멀다고 말할 진댄 분명히 눈앞에 있느니라. 경(經)에 이르시길, 가깝지만 볼 수 없는 것이 만물의 성품이라고 하셨느니라.

해설: 대도(참나)는 멀지도 않고 가깝지도 않다. 마치 허공을 모르고 허공을 찾는 것과 같고 물을 모르고 바다 속에서 물을 찾는 것과 같다. 모르면 시방법계를 다 찾아보아도 찾을 수 없으며 알면 눈앞에 명명백백하다. 구하면 영원히 찾을 수 없고 구함을 쉬면 본래 그 자리에 있음을 알게 된다.

분별하여 얻으려하면 우주법계 그 어느 것도 아니며 분별심을 내려놓으면 산하대지 삼라만상이 모두 참나(도)의 모습이다. 두두물물이 참나에 비친 업식의 환영이니 본성은 모두가 도(참나)이다.

본문: 만약 사물의 본성을 본다면 도를 증득했다고 말한다. 사물의 마음이란 사물의 본성이니 사물의 상에는 없느니라. 즉 사물에 임하여 사물이 없는 것이 사물의 본성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소위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 사물이니 다 사물의 성품을 자세히 보는 것에 실로 오류가 없다면 이것을 진리를 본 것이라고 이름 하여 법을 본 것이라고 이름 하느니라. 가깝지만 볼 수 없는 것은 법의 모습이니라.

해설: 사물의 본성이란 근본성품을 말함이니 텅 비어 있는 공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참나’에 비친 허상이므로 본래 존재하지 않는 것이니 텅 비어 있음이다. 그러므로 부처님께서 무릇 형상이 있는 것은 모두가 허망하다고 하신 것이다.

또한 만약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이 실체가 아닌 줄 알면 그것이 바로 여래를 보는 것이라고 <금강경>에서 말씀하신 것이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참나에 비친 업식의 환영이며 텅 비어 실체가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도를 증득했다고 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리를 깨달은 것이요 견성, 성불이라고도 하는 것이다.

■ 달마사행론 - 29. 대도를 깨달음에 쉽고 어려움

본문: 주석하기를, 지혜로운 사람은 사물에 맡길 뿐 자기에게 맡기지 않느니라. 즉 취하고 버리는 것이 없고 또한 거역하고 따름이 없느니라. 어리석은 자는 자기에게 맡기고 사물에 맡기지 않는다. 즉 취하고 버림이 있고 거역하고 수순함이 있느니라. 만약 텅 비어 넓고 크게 놓아서 천하를 잊는 것은 즉 대상에 맡기고 시절을 따름이니라.

사물에 맡겨 시절을 따르는 것은 쉬운 것이거니와 거역하여 사물을 변화시키는 것은 어려운 것이니라. 만약 사물을 오게 하고 싶다면 맡겨서 거역하지 말며 만약 사물을 가게하고 싶거든 놓아버려 쫓지도 마라. 일하고서 지난 뒤에 후회하지 말며 아직 이르지 않은 일은 놓아버려 생각하지 마라.

이것이 도를 행하는 것이니라. 만약 능히 맡긴다는 것은 즉 천하를 위임해도 득과 실이 나와는 관계가 없느니라. 만약 맡겨놓고 막지 않으며 따르되 거스르지 않는 것은 어느 곳 어느 때나 혼란함이 없다.

해설: 대도를 깨닫는 방법에는 쉬운 길과 어려운 길이 있다. 쉬운 길이란 우주삼라만상 존재하는 모든 것은 실체가 없고 단지 참나에 비친 허상임을 알아 모든 집착하는 마음을 쉬는 것이다. 대상이 환영이니 구하려 하지도 않고 버리려고 하지도 않는다. 나 또한 허상이니 쫓아가지도 않고 거스르지도 않는다.

다만 인연에 맡기고 환영임을 일깨워 이 모든 것의 본성인 참나에 머문다. 어리석은 자는 모든 것이 실체한다고 여겨 스스로 욕망과 집착의 눈으로 스스로 판단하고 선택하고 실행한다. 구하려고 애를 쓰고 벗어나려고 또한 노력한다. 이익이 있으면 순종하고 손실이 있으면 거역한다. 이렇게 실천하는 것이 스스로 원하는 행복을 얻는 지름길이라고 여겨 집착한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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