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생 죄업에 앞선 전생 선업 무르익은 것
원하는 시점만 아닐 뿐…늘 좋은 생각해야
부처님의 열 가지 힘에 대한 <대지도론> 제24권의 설명은 너무 자세해서 재가불자들에게는 좀 버겁다 싶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두 번째 힘인 ‘중생의 과거와 미래와 현재의 모든 업과 그 과보를 아는 힘(業報智力)’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꼭 짚어봐야 할 내용이 있어 소개하려 합니다. 대지도론 제24권에서 인용하고 있는 <중아함경> <분별대업경(分別大業經)>에서 부처님이 아난존자에게 이렇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악을 저지르는 사람이 좋은 곳에 나기도 하고, 선을 짓는 사람이 나쁜 곳에 나기도 한다.”
우리는 보통 악행을 저지르면 괴로운 과보를 받아 나쁜 곳에 태어나고, 선행을 지으면 즐거운 과보를 받아 좋은 곳에 태어난다고 들어서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번 생에 착하게 살면 다음 생에 복 받는다. 이번 생에 나쁘게 살면 다음 생에 괴로움에 시달린다.” 그런데 지금 부처님의 이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과연 아난존자도 이렇게 여쭈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가 있습니까?”
부처님의 대답에 귀를 기울여봄직 합니다.
“악인이 이번 생에 저지른 죄업은 아직 무르익지 않았고, 지난 세상에 지은 선업의 과보는 이미 무르익었다. 이런 까닭에 이번 생에 비록 악한 짓을 저질렀더라도 죽어서 좋은 곳에 나는 것이다. 혹은 죽음에 임했을 때 착한 마음을 일으키면 이런 인연으로 역시 좋은 곳에 나게 된다. 반대로 착한 사람이 나쁜 곳에 태어난다는 말은, 이번 세상에 지은 선업의 과보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는데 지난 세상에 지은 악업이 이미 무르익었다는 말이다. 이런 까닭에 이번 생에 비록 그가 선을 지었다고 해도 죽어서 나쁜 곳에 태어나는 것이다. 또는 죽음에 임했을 때 착하지 않은 마음을 일으킨다면 이 인연으로 역시 나쁜 곳에 태어나게 된다.”
업이란 의도를 가지고 하는 일입니다. ‘전생에 지은 죄’라고 생각하는 불자들이 아직도 많은데, 전생뿐만 아니라 이번 생, 그리고 해탈하지 못하는 한 다가올 다음 생에 의도(의지)를 가지고 짓는 것이 업입니다. 뿐만 아니라 착한 업도 있고 착하지 못한 업도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업을 ‘죄’라고만 생각하고, 그것도 ‘전생에 지은 것’이라고 단정 짓는 분들이 많습니다. 이번 생은 지난 생에 저지른 죄(업)의 과보를 고스란히 받을 뿐이니 그냥 참고 견디자고 생각하는 겁니다. 하지만 이런 생각은 부처님의 업사상이 아닙니다. 당시 인도를 지배하던 숙명론적인 업 사상이었고 부처님은 이런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부처님은 어떤 극한상황에 처해 있더라도 지금 당신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그 난관을 헤쳐 나갈 것을 권합니다. 혹은 지독하게 힘든 상황이라서 그것을 헤쳐 나가기 위한 선한 의지를 일으키기 힘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생에서 다가오는 숱한 사건과 상황 속에서 우리는 또 새로운 선한 의지를 일으켜서 행동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업은 이런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업에 따라오는 과보는 정해진 날짜에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찾아오지 않을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하고, 담담하게 언제나 착한 의도를 가지고 나와 남이 함께 좋은 방향으로 생각하고 행동할 것을 당부합니다.
그런데 <분별대업경>에서의 말씀에서 절대로 오해하면 안 되는 점이 있습니다. A라는 업에 따르는 A라는 과보가 당장 다음 생에 올 수도 있고 그 다음 생, 아니면 그 다음다음 생에 올 수도 있다는 것이지, A라는 과보가 사라진다는 말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현명한 사람은 이런 이치를 아는 사람이요, 당장 자기가 원하는 시점에 원하는 방식으로 과보가 나타나지 않으면 ‘업보라는 거, 그거 다 거짓말이야. 선업 지을 필요 없고 악업 지어도 상관없다’라고 생각해버리는 사람이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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