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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스크랩] 과보는 어두운 밤 화살과 같다

 

 
 

마지막까지 떳떳할 수 있어야

자신의 떳떳함에 즐겁고 행복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악업을 지어도 그에 따른 괴롭고 쓰디쓴 과보가 금방 나타나지 않으면, 악업을 피해갔다고 생각합니다. 선업을 지었는데 달콤하고 즐거운 과보가 빨리 나타나지 않으면, 착하게 살아도 부질없는 짓이라며 후회합니다. 하지만 과보가 언제 나타날지는 알 수 없는 일입니다.

<법구경>에서는 악업을 따라오는 과보가 마치 ‘어둔 밤에 어딘가에서 날아오는 화살과도 같다’라고 표현하고, 선업을 따라오는 과보는 마치 ‘저 멀리 우뚝 솟은 높은 산과도 같다’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피하려 하거나 드러내려고 애를 쓰지 않아도 과보는 반드시 찾아온다는 것을 이렇게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우리는 과보의 요행을 바라기보다는 그저 착한 의도(동기)로 매순간순간을 부지런히 그리고 묵묵히 선업을 짓는데 힘써야합니다.

특히 <대지도론> 제24권에서는 죽음에 임했을 때의 마음가짐이 매우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죽음에 임할 때의 아주 짧은 순간의 마음은 평생토록 행동한 힘보다 뛰어나니, 임종할 때의 마음은 비록 사소할지라도 그 마음의 힘이 매우 세고 예리하다. 불과 같고 독과 같아서 규모나 세력이 적다고 하더라도 아주 큰일을 이룬다. 죽음이 드리울 때의 마음은 결정되어 있고 용맹하고 강건한 까닭에 백 년 동안 지어온 행위의 힘보다 뛰어나다. 이 마지막 마음(後心)을 큰 마음(大心)이라 이름 하니, 몸과 감각기관을 버리는 일이 화급하기 때문이다. 마치 어떤 사람이 적진으로 나아갈 때 몸과 목숨을 아까워하지 않는 것을 강건하다(健)라고 이름 하는 것과 같고, 아라한이 몸에 대한 집착을 버리기 때문에 아라한도를 얻는 것과 같다.”

일생동안 우리는 몇 가지 마음을 지니며 살아왔을까요? 하지만 그 마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임종할 때의 마지막 마음이니, 이 마지막 마음을 어떻게 가질 것인가를 불교에서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 마음을 큰 마음이라 부를 정도이니 그 마지막 마음이 그 사람의 다음 생을 고스란히 보여주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초기경전인 <맛지마 니까야>에 들어 있는 <어리석은 자와 현명한 자의 경>에는 일생을 살아오다가 생의 마지막 즈음해서 그동안 살아온 삶에 대한 생각이 파노라마처럼 스쳐가는 것을 ‘해가 저물 무렵 산그림자가 대지를 덮치는 것과 같다’고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자신이 일생동안 떳떳하게 살아왔다면 지내온 삶을 돌아볼 때 마음이 기쁘고 즐거워집니다. 이 즐거운 마음이 이 생의 마지막 마음이 되면 그는 다음 생에 즐거운 과보를 받는 곳(善處)에 갑니다.

“나는 악행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죽으면 악한 행을 하지 않고 선행을 하고 유익한 행을 하고 두려움에서 피난처를 만든 자들의 태어날 곳으로 나아갈 것이다”라고, 이 사람은 이렇게 생각하여 근심하지도 상실감에 젖거나 슬퍼하거나 울부짖거나 두려움에 떨지도 않고 즐겁고 기뻐하게 될 것이라고 경에서는 말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떳떳하게 잘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자신이 지은 악업 하나가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럴 때 그 사람은 짙은 회한이 마음에 드리우고 그 과보에 대한 두려움이 엄습합니다. 그러면 불안해지고 이런 불안감이 생의 마지막 마음이 될 경우, 그 사람은 괴로운 과보를 받는 악한 곳(惡處)에 난다고 합니다.

평생 착하고 바르게 살아오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래야 마지막까지 떳떳할 수가 있고, 그리고 자신의 떳떳함에 즐겁고 행복해지며, 이런 상태가 다음 생을 불러온다는 것-이것이 바로 <대지도론>에서 말하는 ‘마지막 마음의 힘이 거세다’는 뜻이라 생각합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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