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번뇌 태워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그 습기마저도 태워버릴 수 있기 때문
성문 아라한의 경우에는 비록 번뇌를 끊어 없앴다고는 하지만 오랜 세월 윤회하면서 쌓아온 습관이 남아 있음을 살펴봤습니다. <대지도론> 제27권에서는 이렇게 정의합니다.
“모든 성자들은 번뇌를 다 없앴지만 번뇌의 습이 남아 있으니 마치 불이 장작을 태워버렸지만 숯과 재는 남아 있으니, 불길이 약한 까닭에 완전히 없애버리지 못하는 것과 같다.”
그렇지만 부처님 지혜의 불길은 매우 셉니다. 그래서 모든 번뇌를 태워 없애버릴 뿐만 아니라 번뇌의 습기조차도 남기지 않고 다 태워버린다고 말합니다.
그런 까닭에 부처님은 80평생을 지내오시면서 일희일비(一喜一悲)하지 않았으니 그 예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지만 <대지도론> 제27권에서는 대략 몇 가지로 보여줍니다.
첫째, 어떤 바라문이 부처님에게 500가지나 되는 욕설을 퍼부었습니다. 그것도 대중들과 함께 계실 때의 일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 표정은 물론이거니와 마음 또한 조금도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이 바라문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다시 500가지나 되는 말로 부처님을 찬탄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부처님의 표정이나 마음이 기쁨으로 가득 차는 일도 없었으니 부처님은 헐뜯음(毁)과 칭찬(譽)에 마음과 표정이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둘째, 전차(遮)라는 이름의 바라문 여인은 부처님을 비방해서 자신의 배에 발우를 넣어 임신한 것처럼 꾸몄습니다. 그러면서 부처님의 아이를 가졌다고 소문을 냈는데, 뜻밖에도 부처님은 부끄러워하는 기색이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다 그것이 거짓임이 밝혀졌는데, 사람들의 모함과 비방에서 풀려났을 때에도 부처님은 기뻐하는 표정이 없었습니다.
셋째, 법의 수레바퀴를 굴리실 때에 부처님을 찬미하는 소리가 세상에 가득 퍼졌지만 부처님 마음에 교만이란 없었습니다. 반면, 또 다른 외도여인인 손타리가 죽임을 당하자 세상에는 불쾌한 소문이 가득 퍼질 때에도 부처님은 마음이 위축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으로 치자면, 성스캔들이라고 할 만한 일이 벌어졌지만 부처님은 그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그저 담담히 지내셨던 것입니다.
넷째, 어느 때 부처님은 아라비국에 머무셨는데 그곳은 바람이 몹시 찼고 거친 풀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그런 곳에 머물면서 앉거나 누워야 했을 때에도 부처님은 괴롭다고 여기지 않았습니다. 반면 언젠가 삼십삼천에 올라가 그곳의 환희원이라는 동산에 머무시며 안거를 보내실 때, 제석천의 자리인 검파석(劍婆石)에 앉으셨는데, 그 자리가 부드럽고 깨끗하고 푹신하기 이를 데 없었지만 이 역시 즐거움으로 여기지 않으셨습니다. 괴롭거나 즐겁다며 일희일비하지 않으셨습니다.
다섯째, 부처님은 하늘의 신이 매우 공손하게 천상의 음식을 올렸을 때에도 맛있다고 여기지 않았으며, 반대로 비란야국에서 탁발을 하지 못해 말이 먹는 귀리를 드셨을 때에도 거칠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일곱째, 강대국의 왕들이 가장 맛있는 음식을 올려도 ‘음식을 얻었다’고 생각하지 않았고, 살라마을에 들어가셨다가 사람들이 파순의 꾐에 빠져 아무도 공양을 올리지 않는 바람에 빈 발우로 그냥 나오셨을 때에도 ‘얻지 못했다’며 실망하지 않았습니다.
여덟째, 데바닷타가 부처님을 해치려고 틈을 노리다 어느 날 기사굴산에서 부처님이 지나는 때를 맞춰 커다란 바위를 굴려 떨어뜨렸을 때, 부처님은 살해의 위험을 모면했지만 그런데도 데바닷타를 미워하지 않았습니다. 반면 부처님의 이런 담담한 모습에 감탄한 라훌라가 지극한 마음으로 부처님을 찬탄했지만 역시 이에 기뻐하지도 않으셨습니다.
데바닷타의 꾐에 빠진 아자타삿투왕이 부처님을 시해하려고 또 한 번 흉계를 꾸미지만 역시 부처님의 마음은 그저 담담하고 평정심을 유지하셨으니 그 이야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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