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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스크랩] 자성청정심 진짜 신심이다

불교의 근본은 믿음이다.

 그저 부처님을 믿는 것이라면 이른바 ‘하나님’을 믿는 행위와 도긴개긴일 것이다. 

“자성청정심(自性淸淨心)에 대한 믿음이 진짜 신심”이다. ‘

지금 내가 있는 그대로 한없이 깨끗하고 고귀한 부처’라는 확신이 나를 살리고 남을 살린다. 

요즈음 유행하는 개념으로 따지면 자존감이 곧 신심이다. 

“아무리 값비싼 휴대폰을 소유했다고 한들, 

그걸 봐주는 눈이 없고 그걸 다루는 손이 없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생각할 줄 안다면 누구나 부처입니다. 

내게 주어진 이 몸뚱이 하나만으로,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기뻐할 줄 아는 마음이 바로 신심입니다.” 

그냥 행복하고 마냥 행복한 사람은 남을 해쳐서 살찌우려 하지 않는다. 

이처럼 ‘살아있음’만으로 절대적인 가치를 더욱 값지게 하기 위해, 우리는 수행을 한다. 

수행은 단순한 삶을 위한 연습이다. “눈을 눈답게 쓰고 귀를 귀답게 쓰는 것이 수행입니다. 

눈이 잘 보인다고 남의 재물에 눈독을 들이고

 손놀림이 빠르다고 도둑질을 하고 머리가 좋다고 사기를 치지 않는 게 수행입니다. 

그러므로 특히 출가수행자라면 입이 있는 한 법문을 하고 눈이 있는 한 대장경을 탐독해야 합니다.” 

단순하게 살아야, 단순하게 살려고 노력해야 생각도 청정해진다. 

“아침에 일어나 곰곰이 생각해보세요. 모든 계급장 다 떼고, 

족보에 연연하지 말고, 통장계좌에 얼마나 남았나 전전긍긍하지 말고…, 

이렇게 환하게 볼 수 있고 역력하게 들을 수 있고 또렷하게 말할 수 있는 나는 도대체 무엇인가. 

정말 진실로 내가 부처 아닌가? 유명한 ‘이뭣고’ 화두가 의심 이전에 벅찬 감동으로 다가올 겁니다.” 

나를 믿으면 나의 삶에 만족하게 되고, 나를 진심으로 믿으면 맑아지게 마련이다. 

중생이 오판하고 실수하는 까닭은 끊임없이 본전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반면 마음이 넓은 사람은 항시 지혜롭다. 손해를 두려워하지 않는 덕분이다. 

처지가 어찌 됐든 인내할 수 있기에 지혜롭고 언제나 정직하기에 지혜롭다. 

그러므로 단순한 삶이 가장 위대한 삶이다. 

 “최고의 보시는 재보시”라고 단언했다. “흔히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법보시가 으뜸이라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말도 일단 배가 불러야 귀에 들어오는 법입니다.”

 육바라밀은 대승불교가 독려하는 실천행이다. 6가지 덕목은 마구잡이로 배치한 것이 아니다. 

보시가 선행돼야 지계가 가능하고 지계가 이뤄져야 인욕이 달성된다. 

궁극적으로 마지막 단계인 지혜는 꼼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보시에서 비롯된다. 

“보시는 인간성의 기본입니다. 

그리고 베푸는 마음가짐을 지닌 사람이 세상의 질서를 잘 지킵니다. 

속 좁은 사람일수록 계율 무시하고 삽니다. 

도덕적인 사람은 참을성이 강합니다. 잘 참는 사람이 게으르겠습니까? 

부지런합니다. 이게 정진바라밀입니다.

 매사를 성실하게 임하며 스스로 이롭게 하고 남도 이롭게 합니다. 

게으른 사람이 참을성 있는 것 봤습니까? 욕심만 부지런합니다. 

정진이 무르익으면 완전히 도정(精)된 쌀알처럼 성품이 단단하고 매끄럽습니다. 

이익이 된다고 흔들리지 않고 손해가 된다고 흔들리지 않습니다.

 비방을 당해도 견디고 칭찬을 받는다고 흐뭇해하지 않습니다. 

생활이 고요해지니 선정이요 결국 살아가는 자체가 지혜입니다.”

 걸어 다니기만 해도 전법(傳法), 웃기만 해도 법열(法悅)인 경지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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