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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무엇을 어던 마음으로 베풀것인가

수십 겁에 걸친 보시행이라도

한순간 인색함으로 공덕 사라져

사리불은 세세생생 윤회를 거듭해오면서 쉬지 않고 보살도를 행했습니다. 그는 특히 보시에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대지도론> 제12권에 따르면 60겁 동안 보시행을 해왔다고 하니 어지간도 합니다.

1겁이란, 시간상으로 정확히 얼마나 걸리는지 말하기가 어려워 비유로 설명합니다. ‘잠자리날개 옷을 입은 하늘여인이 백년에 한 번씩 지상에 내려와 거대한 바위산을 사르락 스치고 올라가서 그렇게 해서 그 바위산이 다 닳아지면 1겁…’. 그러니 그런 세월이 60번이니, 60겁이란 시간은 아예 헤아릴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길고도 긴 시간입니다. 아무튼 그 길고 긴 세월을 윤회를 거듭해오면서 사리불은 보시행을 쉬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이 벌어졌습니다. 행색이 추레한 거지 한 사람이 사리불에게 다가와서 뭔가를 달라고 손을 내민 것입니다. “저, 스님, 제게 당신의 눈을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

사리불은 귀를 의심했습니다. 설마 멀쩡한 자기 눈을 뽑아달라는 건가? 그는 정중하게 거절했습니다. “다른 걸 원하면 다 드리겠습니다. 눈만은….”

하지만 거지는 사리불이 거절하는 바로 그 눈을 달라고 졸랐습니다. “아니요. 내가 원하는 건 바로 당신의 눈입니다. 바로 지금 나를 바라보고 있는 그 눈! 그걸 주십시오. 다른 건 필요하지 않습니다.”

사리불은 잠시 마음이 흔들렸지만 이내 결심했습니다. ‘내가 보시행을 완성하겠다고 서원을 세우지 않았던가! 그러니 눈 내주기를 망설일 필요는 없다.’

그는 자신의 한쪽 눈을 빼내어 거지의 손에 쥐어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거지는 제 손바닥 위에 놓인 사리불의 눈알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냄새를 맡았습니다. 그러더니 대뜸 욕설과 함께 그 눈알을 바닥에 내던졌습니다.

“으윽, 토하는 줄 알았네. 정말 역겨운 냄새네. 어찌 이리 냄새나고 더러운 걸 그토록 아꼈단 말이야. 보시행을 완성하겠다고 큰소리치더니 사리불도 별 수 없군.”

그뿐인가요? 거지는 흙바닥에 내팽개쳐진 사리불의 눈동자에 침을 뱉고 발로 짓이기더니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가 버렸습니다.

사리불…. 존자 사리불….

그 귀한 눈 한쪽이 낯선 자의 가래침에 더럽혀지고 흙발로 짓이겨진 채, 한순간에 애꾸눈이 되어버린 사리불이 혼자 남았습니다. 사리불은 그 거지에게 제 눈을 뽑아줘야 할 의무도 없었습니다. 거지는 사리불의 멀쩡한 눈을 달라고 졸라댈 권리가 없었습니다. 아니, 멀고 먼 전생에 어쩌면 이 같은 채무관계가 엮였다가 이번에 변제의 시기가 무르익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그래도 이건 너무합니다. 아무리 중생을 제도하겠노라고 큰 원을 세웠지만 이토록 잔인하고 무자비한 반응을 보이는 중생에게까지 뭘 어떻게 해야 한단 말인가요?

사리불은 참담해졌습니다. 짓이겨진 눈알을 내려다보는 사리불의 마음이 어땠을까요? 그의 마음은 서서히 닫혔습니다. 꽉 닫혔습니다.

‘이렇게 잔인할 수가 있는가. 필요하지도 않은데 눈을 달라고 졸라 기어코 빼앗아가서는 흙바닥에 내팽개치고 침을 뱉고 짓이기기까지 하다니, 이보다 더 포악한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 저자는 나의 선한 마음을 가지고 장난을 친 것뿐이요 내가 저자의 잔인한 놀이에 이용당할 수는 없다. 내가 이런 사람까지 구제해야 할까? 조용히 내 번뇌 없애는데 매진해서 생사를 벗어나느니만 못하겠구나.’

사리불이 이렇게 생각하는 순간 그는 보살도에서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인색함이라는 이쪽 언덕(차안)에서 보시의 강을 건너서 저쪽 언덕(피안)에 도달(바라밀)하려던 찰나에 그는 포기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어떻게 내 눈을 저 거지같은 자가….” 이 생각에 덜컥 걸려버린 사리불입니다. 그래서 그의 보시는 그저 보시였을 뿐, 보시바라밀은 될 수 없었습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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