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높이 맞춰 소통하기 위한 수단
사람을 ‘상중하’로 분류하려는 게 아니라
깨달음의 세계로 이끌기 위한 ‘가능성’
세상에 성장하는 모든 것은 뿌리가 있기 마련이다. 뿌리는 줄기의 굵기와 크기 그리고 세월의 흐름만큼 땅에 의지해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다. 또한 줄기는 크기만큼 햇살을 머금고 뿌리는 깊이만큼 수분을 모아 각기 종자의 특성을 드러내며 해를 거듭할수록 좋은 결실을 맺는다. 이러한 작용의 힘을 근기(根機)라고 한다. 이는 뿌리의 성장력과 줄기와 잎의 크기에 따라 더 자람과 덜 자람, 많은 결실과 적은 결실의 차이를 나타낸다. 이와 같이 수행을 하는 사람들도 그 능력에 따라 받아들일 수 있는 교법의 수준을 달리한다. 이것을 식물의 성장에 비유한 것이 근기다.
흔히 수행을 하려면 ‘근기가 있어야 한다’고 한다. 여기서 말하는 근기는 무엇인가를 담을 만한 크기와 모양인 근성과 그것을 자기화할 수 있는 기질들을 가리킨다. 사람에 따라 각기 자란 환경과 배경에 따라 생긴 특징이나 경험과 교육을 통해서 형성된 정체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근(根)은 인드라에서 파생된 인드라야(indriya)를 말하는데, 지배적인 힘 혹은 성장시키는 힘을 말한다. <구사론>3권에서는 “최고의 지배력과 빛을 냄을 근이라고 이름하며, 이 때문에 전체적으로 근은 증상(增上)이라는 뜻을 갖는다”고 한다. 근은 가장 기본적인 요소이면서 성장시키며 증가시키는 힘을 말하는 것이다. 유식학에서는 식(識)을 발생시키는 특수한 능력을 가진 것으로 종자(種子)와 같은 개념으로 보고 있다. 근기의 우열에 따라 이(利)와 둔(鈍)으로 나누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상중하 근으로 나눠 말한다. 수행을 통해서 둔근이 이근으로 변하고, 하근이 상근으로 옮겨가는 것을 전근(轉根)이라고 한다. 따라서 근은 바탕이 고정돼 있지만 불변(不變)한 것은 아니다. 수행과 정진의 힘으로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이다. 바로 증상(增上)의 힘으로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가능성을 말한다.
기(機, 器)는 본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가능성이 적절한 인연을 만나면 현실화되는 것이다. 그 가능성을 근기라고 하고, 가능성을 촉발시키는 조건이 되는 인연을 기연(機緣)이라고 한다. 이때 기는 교화의 대상이며, 연은 교화하는 사람을 포함한 다양한 조건들을 말한다.
<법화현의>6권에 보면 기(機)를 미(微).관(關).의(宜)로 나누고 있다. 기미(機微)는 장차 발동하게 될 선(善)의 기미를 말하는데, 부처님의 교화로 이 기미를 촉발하지 않으면 드러나지 않는다. 그래서 “부처님이 선한 기미에 응하면 선이 생겨나고 응하지 않으면 발생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관(關)은 부처님이 중생의 선.악.소질.능력 등에 응하여 하는 교화 곧 부처님이 중생의 기틀에 자비로써 적절하게 응하는 것을 말한다. 의(宜)는 부처님의 교화에 중생의 근성이 잘 들어맞는 것으로 “무명의 고통을 뽑아 버리려면 비(悲)에 들어맞아야 하고, 법성의 즐거움을 주고자 하려면 자(慈)에 들어맞아야 한다”고 했다. 기는 반드시 불확실하거나 밝히기 힘든 어떠한 종류의 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천차만별이다. 기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바탕을 말하는 것이나 가르침을 받아들일 수 있는 능력이다.
수행을 하고 안하는 것이나 법을 배우고 익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이 때문이다. 우리들이 어떠한 일을 접할 때 나의 기틀에 따라 받아들이는 과정이 다르고, 그에 따라 결과도 정해진다. 따라서 기틀을 키우기 위해 우리 스스로 노력해야 한다. 우리들의 기틀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언제든지 좋은 인연을 만나면 좋은 쪽으로 발동(發動)하는 것이다.
근기라는 것은 본래 사람을 상중하로 분류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부처님의 가르침에 어긋나는 일이다. 근기는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춰 소통하기 위한 수단이며, 이를 통해 깨달음의 세계로 함께 동행을 해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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