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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계.정.혜. 삼학에 대하여

만약 비구들이 길을 가다가 도적들에게 가지고 있던 물건을 빼앗긴 일이 있다 하자. 이때 도적의 수는 적고 비구의 수가 많았다. 혹 도적들이 빼앗을 물건을 가지고 이미 다른 곳으로 갔지만 이 비구들이 만일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하지 않고 본래의 물건을 찾아왔다면, 죄가 없지만(無罪) 만약 이미 잃어버렸다는 생각을 했다가, 다시 찾아왔다면 이는 도적이 되어 다시 도적을 겁탈한 것이 된다.”

   
 

위의 말은 도둑을 맞아도 도둑을 맞았다는 생각이 없이 물건을 되찾는 것이 완전한 율행(律行)이 된다는 말이다. 계학의 근본 뜻이 정학과 혜학에 관통되어 있음을 시사하는 말로 볼 수 있는 대목이다. 흔히 계·정·혜 삼학을 삼위일체(三位一體)라고 한다. 이 말은 계(戒) 속에 정(定)과 혜(慧)가 들어있고, 정(定) 속에 계(戒)와 혜(慧)가 들어 있으며, 혜(慧) 속에 계(戒) 정(定)이 동시에 들어 있다는 말이다. 삼학이 서로 불가분리의 관계 속에 있어 동시에 성취되는 것이란 뜻으로 선(禪)에서 말하는 무심(無心) 도리와 상통한다. 또한 <금강경> 등에서 설한 상(相)을 여읜 마음인 무소주심(無所住心)이 계행 속에서도 실천됨을 뜻한다. 달리 말하면 계를 잘 지켜도 계를 잘 지킨다는 생각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다. 곧 무위심(無爲心)의 실천을 말한다. 계를 지켜도 지킨다는 생각이 없어야 하는 것은 선(禪)에서 말하는 도를 닦아도 닦음이 없어야 한다는 말과 같다.

임제스님이 말했다. “만약 도를 닦는다 하면 닦아지지 않는다. 망상만 더할 뿐이다.”

수행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말없는 실천이다. 아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 부처님은 수행의 시작을 계로써 하도록 하였다. 계율은 아는 데 있지 않고 실천하는 데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계의 근본인 도는 아는데도 속하지 아니하고 모르는데도 속하지 않는다 하였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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