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와 도교 그리고 유교에서도 궁극적인 진리를 지칭하여 도(道)라는 말을 써 왔다. “도가 무엇인가?” 도를 닦는 사람들이 자주 이런 질문을 해왔다. 노자는 <도덕경>에서 “도를 도라 하면 참 도가 아니다(道可道非常道)”라고 했고, 공자는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고 했다. 도대체 도가 무엇이기에 도를 들으면 죽어도 좋다 했는가? 사실 이 도에 대한 의문은 오랜 역사 속에 사람의 마음에 항상 품어져 있었던 것이다. 중국 당나라 때 조주(趙州)스님이 젊었을 때 남전보원(南泉普願) 선사를 찾아가 도를 묻는 대화를 나눴다.

“어떤 것이 도입니까?”

“평상심(平常心)이 도니라.”

“그러면 이 평상심을 어떻게 가지고 있어야 합니까?”

“어떤 방법이나 방향을 이미 정해 놓고 있다면 이것은 도에 어긋나게 되느니라.”

“그렇지만 방법이나 방향을 모르고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도는 아는 데 속하지 아니하고 모르는 데 속하지도 아니한다(道不屬知不知). 알았다고 하면 그것은 곧 망상이요, 모른다고 하면 곡 무기(無記)이다. 만약 참으로 도를 통달하면 마치 태허공이 확 트인 것 같거늘 어찌 시비할 게 있겠는가?”

이 말 끝에 조주는 단박에 깨달았다고 전해진다. 이 이야기는 <무문관(無門關)>이란 책에 나오는 이야기이다. 도를 통달하면 허공처럼 확 트여 시비할 게 없다한 말이 도의 경지를 보여준 말이라 할 수 있겠다. <무문관>의 저자 무문 혜개(無門慧開, 1183~1260)선사는 앞의 두 스님의 대화를 두고 유명한 시를 지었다.

봄에는 꽃이 피고 가을에는 달이 밝다.(春有百花秋有月)

여름에는 시원한 바람 겨울에는 눈(夏有凉風冬有雪)

만약 부질없는 일에 얽매이지 않으면(若無閑事掛心頭)

인생은 언제나 즐거운 세상사는 것이네.(便是人間好時節)

사계의 경관을 그대로 수용하면서 어디에도 막힘이 없이 확 트인 마음의 자유자재한 경지를 읊은 시라고 할 수 있는 시이다. 육조 혜능(慧能, 638~713)선사는 “도는 통하여 흐르는 것(道須通流)”이라고 말했다. 도는 막힌 것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비유하여 말하자면 물이 웅덩이에 고여 있지 않고 가득 찬 다음에 넘쳐흐른다는 뜻이다. 또 이고(李)가 약산 유엄(藥山惟儼, 745~828)선사를 찾아가 도를 물었을 때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대답했다. 후에 이고는 내가 가서 도를 물었더니 다른 말은 하지 않고 “구름은 하늘에 있고 물은 병에 있다”고 했다. 마치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라는 말과 비슷하다.

<금강경> 오가해의 야보도천(冶父道川)의 송에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인데 부처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구절이 있다. 여래는 상을 떠나 몸매로 볼 수 없고 소리로 찾을 수 없다는 경 본문의 반의적으로 말을 붙여둔 착어(着語)에 나오는 이 말은 상으로 부처를 찾아서도 안 되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상을 떠나 부처를 찾는 것도 아니라는 뜻에서 한 말이다. 바꾸어 말하면 ‘도는 있는 데도 없고 없는 데도 없다’는 말이다. 그런데도 사람이 도를 멀리 하는 것일 뿐 도는 사람을 멀리 하지 않는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