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의 참 모습이며 실상
모든 생명의 근원 비로자나
구름에 가려도 태양이 지구 비추듯
법신은 우리에게 영원한 진리의 빛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태양에너지를 의지해서 성장한다. 태양의 빛과 열기로 생명은 탄생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태양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처럼 불교에서는 비로자나청정법신이 그러하다. 법신(法身, dhama-kaya)은 부처님의 참모습이며 실상이다. 또한 부처님이 설한 신 바른 법을 말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스스로 지닌 성품인 여래장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행을 통해서 교화하다가 수행의 여정을 마치고 열반에 드신 뒤 부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존재하던 부처님 자리에 부처님이 남기신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그리며 영원한 부처님으로 탄생시킨다. 역사적인 진리의 존재가 우리 곁에 항상 함께하는 법신불로 승화된 것이다. 하늘이 구름에 가려도 태양이 지구를 비추듯 법신은 영원한 진리의 빛을 발하고 있다.
법신은 자성신, 수용신, 변화신이라는 차별상이 있다. 자성신(自性身)은 부처님의 진실하고 청정한 법계로 스스로의 성품 그 자체가 부처님인 것을 의미이다. 수용신(受用身)은 자수용과 타수용으로 나누는데, 자수용은 부처님께서 심무수겁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복과 지혜의 자량을 닦아서 일으킨 끝없이 진실한 공덕과 지극히 원만하고 청정하여 항상 어디나 두루 존재해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타수용은 부처님께서 평등한 지혜와 미묘하고 청정한 공덕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중생들에게 설하며 그들을 즐겁게 하고 온갖 의심을 끊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신(變化身)은 부처님께서 중생들 종류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여 중생들의 모습으로 중생과 함께 구원의 본원을 성취하는 모습이다.
<화엄경> 7권에는 “부처님의 법신은 헤아릴 수 없어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그림자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능히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의 마음을 즐기는 성향에 따라 모두 볼 수 있도록 한다네. 때로는 중생을 위하여 짧은 수명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무량한 한 겁까지 지속되는 수명을 누리시노라. 법신은 시방 어디에나 두루 나타나시니, 마땅히 인연에 따라 세간에 출현하노라”라고 했다. 법신은 중생들의 즐기는 성향에 따라 우리 곁에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법신의 존재를 우리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법신의 존재임을 확인할 때 가능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태양에너지를 머금고 사는 존재이며 우리 몸에 태양에너지를 담고 있는 생명이라는 것과 같다. 법신은 새롭게 만들거나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여래의 법신을 발견하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장(如來藏)이다. <진심직설> ‘진심재미’에 “법신은 누구에게나 본래 있으니, 이는 부처님과 함께 누리는 공통점이다. 범부는 망상에 덮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법신이 번뇌의 그물에 얽혀 있으므로 ‘여래장’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은 자성청정불이다. 자성이 청정한 것은 부처님이나 중생이 같다. 다만 중생은 스스로 청정한 성품을 보지 못하고 체득하지 못할 뿐이다. 욕망의 가림 막에 가려진 중생의 마음에 비로자나부처님의 찬란한 광명이 비춰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햇빛이 드리우지 못하는 생명은 성장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비로자나부처님, 대일여래(大日如來)의 광명 없이 지혜가 싹틀 수 없으며, 자비실천의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중생의 가림 막을 활짝 열어 내안의 청정 그대로인신 큰 빛, 비로자나의 광명을 만나야 한다. 대일여래의 밝은 햇빛은 지혜로, 따스한 햇볕은 자비로 변화해 우리 곁에 함께할 것이다.
부처님의 참 모습이며 실상
모든 생명의 근원 비로자나
구름에 가려도 태양이 지구 비추듯
법신은 우리에게 영원한 진리의 빛
세상의 모든 생명은 태양에너지를 의지해서 성장한다. 태양의 빛과 열기로 생명은 탄생하고 성장한다. 그리고 소멸하는 과정을 거친다. 태양이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의 근원인 것처럼 불교에서는 비로자나청정법신이 그러하다. 법신(法身, dhama-kaya)은 부처님의 참모습이며 실상이다. 또한 부처님이 설한 신 바른 법을 말하기도 하고, 부처님의 스스로 지닌 성품인 여래장이라고도 한다.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유행을 통해서 교화하다가 수행의 여정을 마치고 열반에 드신 뒤 부처님을 따르던 많은 사람들은 육신으로 존재하던 부처님 자리에 부처님이 남기신 ‘진리’를 신앙의 대상으로 그리며 영원한 부처님으로 탄생시킨다. 역사적인 진리의 존재가 우리 곁에 항상 함께하는 법신불로 승화된 것이다. 하늘이 구름에 가려도 태양이 지구를 비추듯 법신은 영원한 진리의 빛을 발하고 있다.
법신은 자성신, 수용신, 변화신이라는 차별상이 있다. 자성신(自性身)은 부처님의 진실하고 청정한 법계로 스스로의 성품 그 자체가 부처님인 것을 의미이다. 수용신(受用身)은 자수용과 타수용으로 나누는데, 자수용은 부처님께서 심무수겁 동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복과 지혜의 자량을 닦아서 일으킨 끝없이 진실한 공덕과 지극히 원만하고 청정하여 항상 어디나 두루 존재해 스스로 깨달음의 경지를 즐기는 것을 말한다. 타수용은 부처님께서 평등한 지혜와 미묘하고 청정한 공덕으로 깨달음의 경지를 중생들에게 설하며 그들을 즐겁게 하고 온갖 의심을 끊게 하는 것을 말한다. 변화신(變化身)은 부처님께서 중생들 종류와 환경에 맞게 변화하여 중생들의 모습으로 중생과 함께 구원의 본원을 성취하는 모습이다.
<화엄경> 7권에는 “부처님의 법신은 헤아릴 수 없어 빛깔도 없고 모양도 없으며 그림자도 없지만, 중생을 위하여 능히 여러 가지 모습을 나타내어, 그들의 마음을 즐기는 성향에 따라 모두 볼 수 있도록 한다네. 때로는 중생을 위하여 짧은 수명을 나타내기도 하고, 때로는 무량한 한 겁까지 지속되는 수명을 누리시노라. 법신은 시방 어디에나 두루 나타나시니, 마땅히 인연에 따라 세간에 출현하노라”라고 했다. 법신은 중생들의 즐기는 성향에 따라 우리 곁에 나타내는 특징이 있다. 다시 말해 우리는 이미 법신의 존재를 우리 안에 감추고 있는 것이다. 이를 나타내게 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법신의 존재임을 확인할 때 가능한 것이다. 마치 우리가 태양에너지를 머금고 사는 존재이며 우리 몸에 태양에너지를 담고 있는 생명이라는 것과 같다. 법신은 새롭게 만들거나 창조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간직하고 있는 여래의 법신을 발견하고 키워내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여래장(如來藏)이다. <진심직설> ‘진심재미’에 “법신은 누구에게나 본래 있으니, 이는 부처님과 함께 누리는 공통점이다. 범부는 망상에 덮여 있으므로 말미암아 있으면서도 알아차리지 못하니, 법신이 번뇌의 그물에 얽혀 있으므로 ‘여래장’이다”라고 말하는 것이다.
법신인 비로자나부처님은 자성청정불이다. 자성이 청정한 것은 부처님이나 중생이 같다. 다만 중생은 스스로 청정한 성품을 보지 못하고 체득하지 못할 뿐이다. 욕망의 가림 막에 가려진 중생의 마음에 비로자나부처님의 찬란한 광명이 비춰지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햇빛이 드리우지 못하는 생명은 성장할 수 없고 열매를 맺을 수 없듯이 비로자나부처님, 대일여래(大日如來)의 광명 없이 지혜가 싹틀 수 없으며, 자비실천의 열매를 얻을 수 없다. 우리는 날마다 중생의 가림 막을 활짝 열어 내안의 청정 그대로인신 큰 빛, 비로자나의 광명을 만나야 한다. 대일여래의 밝은 햇빛은 지혜로, 따스한 햇볕은 자비로 변화해 우리 곁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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