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안종사 만남에 주안점 두고
습기의 어리석음을 제어해야
진정한 본색도류(本色道流)라면 반드시 정견(情見)을 벗어나서 별도의 생애를 설정해야 하는 것이니, 결코 썩은 물속에서 살아날 계책을 짓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만 비로소 이 집안의 가업을 계승하리라. 여기에 이르러서는 예부터 내려오는 법이 있다는 사실을 똑바로 알아야 한다. 이른바 유하혜(柳下惠)의 일을 잘 배우면 결코 그의 자취를 본받지 않으리라는 것이다. 이 때문에 옛사람들은 말하기를, “한 마디 합당한 말은 만 겁에 노새 매는 말뚝이라네”라고 하였는데, 참으로 옳다 하겠다.
근본 문제를 해결하려고 뜻을 낸 공부인이라면 세상의 이치를 묻고 따지는 정식(情識)의 알음알이에서 훌쩍 벗어나야 한다. 실상(實相)을 밝혀 전도몽상(顚倒夢想)의 육도윤회에서 해탈하자는 것이다.
유하혜는 중국 춘추전국시대의 대표적인 성인군자로 칭송받던 사람이다. 공자는 그를 덕행과 예절을 갖춘 어진 현자(賢者)로 흠모했으며, 맹자는 그를 ‘화성(和聖)’이라 칭하며 존경했다. 유가(儒家)에서는 이상적인 성인군자를 본받도록 하지만, 선가(禪家)에서는 선이나 악, 그 어떤 것에도 물들지 않는 대자유인이 되라고 한다. 자칫 ‘부처’니 ‘마음’이니 하는 말만 배워서 알음알이로 붙들고 흉내 내면, 부질없이 일생을 허비하게 된다. 아무리 훌륭한 성인의 말씀이라도, 곧이곧대로 따르라고 한다면 그것은 곧 나귀를 매는 말뚝이 되고 만다. 그래서 마음공부의 경계 속에서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조사를 만나면 조사를 죽이라(殺佛殺祖)’는 독특한 임제가풍이 천하를 풍미해온 것이리라.
화두도 마찬가지다. 눈앞을 가로막는 은산철벽을 마주한 듯이 활구의심이 일어나야 된다. 지금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될 수밖에 없는 화두라야 생사대사를 해결해줄 수 있다. 화두를 염불하듯이 입에 달고 다니면, 노새 매는 말뚝이 되어 영험 없는 사구(死句)로 전락한다.
눈 밝은 선지식이라면 법을 물어오는 공부인으로 하여금 당장에 근본에 사무쳐 의심할 수 있도록 장치해줄 수 있어야 된다. 따라서 생사대사를 해결하려는데 뜻을 둔 공부인이라면, 하루속히 명안종사를 만나는데 주안점을 두어야 한다.
유(有)를 타파한 법왕(法王: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셔서 중생의 욕구에 따라 갖가지로 법을 설하시나, 그 설법은 모두 방편임을 미루어 알 수 있다. 그것은 다만 집착과 의심을 부수고 알음알이와 아견(我見)을 부숴주기 위해서이니, 그 많은 악각악견(惡覺惡見)이 없다면 부처님이 세간에 나오시지 않을 터인데, 하물며 갖가지 법을 설할 까닭이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일대사 인연을 위해 세상에 출현하여 팔만장경을 말씀하셨다. 그렇지만 이와 같은 방편설은 중생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병에 응해서 약을 베풀어 병을 낫게 해주신 것이다. 이렇듯 악지악각은 고칠 수 있었지만, 정작 생사문제는 남이 가르친다고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기 때문에 최후에는 부처님의 가르침까지도 잠시 내려놓고, 참선공부 하여 스스로 본래면목을 밝혀야 된다고 말한 것이다.
옛사람은 종지를 체득한 뒤에는 깊은 산 초막이나 돌집 속에서 다리 부러진 솥에 밥을 해 먹으며 10년이고 20년이고 지냈다. 그리하여 세상사를 모두 잊고 티끌세계를 영원히 떠났었다. 요즈음 시대엔 감히 그와 같기를 바라지는 못한다 해도 명예와 자취를 버리고 본분을 지켜 오로지 도에 순숙한 노납자가 되어야 한다.
선지식을 의지해서 공부하고 난 뒤에도 오랜 습기로 인한 어리석음이 남아있을 수 있기 때문에, 옛사람들은 산속 깊이 들어가서 이런 습성을 제어할 수 있을 때까지 많은 시간을 보내곤 했다. 성품을 밝히고 난 뒤에도 항상 가랑비에 옷 젖듯이, 살얼음을 걷듯이 겸손하고 신중하게 처신하면서, 성태(聖胎)를 오랫동안 잘 기르는 것이 공부인의 바른 모습일 것이다. 옛날 위산이나 조주 같이 이름난 선지식도 오랫동안 익힌 뒤, 중생들과 함께하면서 법을 폈던 전례를 보면 더욱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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