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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생멸심이 마음의 작용이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마음 바탕 생멸심 알기 위해 공부

원리 제대로 알면 괴로움이 없다

본문: 何名大善知識 解最上乘法 直示正路 是大善知識 是大因緣 所謂化導令得見佛 一切善法 皆因大善知識能發起 故三世諸佛 十二部經 云在人性中 本自具有 不能自性悟 見性

 

해석: “어떤 것을 큰 선지식이라 하는가? 최상승법을 깨달아 바른 길을 올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바로 큰 선지식이며 또한 바로 큰 인연이니라. 이른바, 교화하고 지도하여 부처를 보게 하는 것이니, 모든 착한 법이 다 큰 선지식으로 말미암아 능히 일어나느니라.

그러므로 삼세의 모든 부처와 십이부의 경전들이 사람의 성품 가운데 본래부터 스스로 갖추어져 있다고 할지라도, 능히 자성을 깨닫지 못하면 모름지기 선지식의 지도를 받아서 자성을 볼지니라.”

  
 

법문: 우리가 공부를 하는 까닭은 생멸심(生滅心)이 생멸심이 아님을 깨닫기 위해서다. 제대로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대승의 깊은 가르침인 정견이 바로 서야하고 이를 위해서는 선지식을 통할 때 인생관 수행관 생활 가치관을 바르게 세울 수 있다.

그런데 선지식을 만난다 해도 그 사람의 발심에 따라 선지식의 역할과 영향의 크기가 정해진다. 곧 울림의 정도가 정해지는 것이다. 그러면 발심은 어떻게 하는 것인가. 바로 생사없는 도리를 깨닫기 위해서라고 대부분 말한다.

생사 없는 도리란 무엇인가? 생(生)이라고는 것은 항상 경계로 인해서 마음의 대상을 통해 일어나고 멸하는 것이다. 마음은 언제나 대상을 접함으로써 일어나고 멸한다. 그런데 일어나는 것을 생, 멸하는 것을 멸이라고 할 때 일어나는 생을 생이 아닌 이치를 알아야하며 멸해도 멸이 완전히 없어지는 단멸(斷滅)이 아님을 아는 것이 바로 생멸이 없는 도리를 아는 것이다.

일상의 승가 생활을 통해서 쉽게 말하자면 이런 것이다. 스님들과 함께 공부하다 보면 선배와 후배 사이, 스승과 제자 사이에 경계가 상충될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스트레스를 받게 되는데 공부 입장에서 보면 그 때가 바로 진짜 공부할 식량을 받는 것인데, 법을 모르면 이를 허망하게 써버리게 된다.

화가 나면 산에 가서 두어 시간 등산을 하며 분을 삭히는데 어떻게 푸는가 하면 화가 나는 마음을 대상으로 삼아 관하면서 나를 화나게 한 그것이 무엇인지를 살피는 방식으로 한다. 즉 내 마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다. 그런데 사실은 마음은 대상이 아니고 마음의 작용이다.

바닷물에 비유하면, 파도가 천 가지 만 가지 모양으로 일어난다 해도 어떤 모양을 갖고 일어나더라도 결국은 물이다. 그처럼 내 마음이 작용해서 일어난 그것이 무엇이든 결국 마음인 것이다. 이를 자꾸 대상으로 놓고 보기 때문에 생멸심이 생기고 고통이 생기는 것이다.

그래서 혼자서 사유를 하더라도 정법을 모르면 나는 옳고 저것은 잘못됐다고 상대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반면 정견을 바로 알면 일어나도 일어난 것이 마음의 작용일 뿐임을 알게 되는 것이다.

이런 것들이 선지식으로부터 듣는 심지 법문이다. 심지는 우리의 본래 청정하고 그 괴로움이 없고 본래 무심한 우리의 본성이다.

직지인심이란 바로 심지의 본 바탕으로 심지의 정체성을 보는 것이다. 이 순간에 듣고 바로 깨달으면 상근기이며 못 깨달으면 원리라도 알아야 한다. 어떤 원리인지는 알아야 한다. 마음의 바탕인 생멸심의 원리를 알기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공부로 이를 알면 어느 순간 당해도 괴로움이 없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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