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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내 몸이 환영인데 더러움 깨끗함이 있겠는가

 

어리석은 자는 부처님 따로 두어 경배

수행자는 내 마음 속 부처 ‘자성불’ 귀의

본문: 온실이란 곧 몸에 비유함이니 즉 지혜의 불을 피워서 계율의 탕물을 맑고 따뜻하게 하여 몸 안의 진여불성을 목욕시키되 일곱 가지 법으로써 스스로 장엄하느니라. 그 때 비구들은 총명하고 지혜가 뛰어났기 때문에 모두가 부처님의 뜻을 깨달아 가르침대로 수행하였으므로 공덕을 성취해서 모두가 성인의 지위에 오를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의 중생들은 어리석고 둔하여 이 일을 알지 못하고 세간의 물로써 육신만을 씻으면서 스스로 가르침에 의지한다고 하니 이 어찌 잘못이 아니리오? 그리고 참 성품은 범부의 형체가 아니요 번뇌의 때는 본래 모습이 없거늘 그 어찌 형태가 있는 물로 무명의 몸을 씻으리오. 사리에 맞지 않거늘 어떻게 도를 깨달을 수 있으리오? 항상 이렇게 관하라. 이 몸은 본래 탐욕으로 인하여 부정한 곳에서 생긴 것이다. 누린내와 똥이 뒤섞여 안팎에 가득하다고. 만일 이 몸을 씻어서 깨끗하기를 바란다면 마치 진흙을 씻어도 맑아질 수 없는 것 같나니 겉으로 씻는 것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의도가 아님을 분명히 알 수 있느니라.

해설: 온실이란 아상(我相)을 말함이니 부처님의 법을 배우고 수행하여 정진의 불을 피우고 그 불꽃의 빛인 지혜 광명을 비추어 탐·진·치 삼독의 더러운 때와 무명의 어두움을 씻어내어 중생들 누구나 스스로 지니고 있는 ‘참나’의 깨달음에 이르는 수행 방법과 과정을 목욕에 비유한 것이다. 왜냐하면 힌두교 수행자인 바라문들이 갠지스강물에 목욕하면 지은 악업이 소멸되고 몸과 마음이 청정해져서 범천에 환생한다고 믿고 목욕했기 때문이다. 부처님께서 이 어리석음을 경계하신 것이다. 만약 성수에 목욕하여 업이 소멸된다면 갠지스 강물에 사는 모든 물고기는 이미 부처이거나 제일 먼저 성불할 것이다. 어디 갠지스강 뿐이랴. 성스러운 산과 계곡, 성지와 불탑, 불상 등등 모두가 내 마음이 만든 또 다른 허상일 뿐이다. 본래 삼라만상 그 어느 것도 성스럽지도 속스럽지도 않으며 그 대상도 실체하지 않는 업식의 허상이며 그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아는 나 역시 존재하지 않는 업식의 흔적일 뿐이다. 이 모든 것을 비추어 아는 참나 만이 홀로 항상 영원하다. 이러한 이치를 모르고 중생들이 육신에 집착하므로 부처님께서 부정관을 말씀하신 것이다. 본래 아상이 없거늘 내 몸이 어디에 있으며 내 몸이 환영인데 어떻게 더럽고 깨끗하겠는가. 어리석음에 부질없이 환영에 허상을 더해 어지러이 생사의 업을 지을 뿐이다.

◼ 달마관심론 -  염불을 밝히다

 

본문: 혜가스님이 질문했다. “경전에서는 지극한 마음으로 염불하면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으니 이 미묘한 법문대로라면 바로 성불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어찌 마음만 관하여 해탈을 구하라고 하십니까?

달마대사가 대답했다. “염불이란 바른 생각을 닦는 것이니 궁극적인 의미를 바르다 하고 궁극적이 아닌 의미를 삿되다고 하느니라. 바른 생각은 반드시 서방정토에 왕생할 수 있겠지만 삿된 생각으로 어찌 저 정토에 도달할 수 있겠는가? 부처란 깨달음이니 몸과 마음을 깨우치고 살피어 악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이요, ‘생각한다 함(念)’은 기억한다는 것이니 계행을 기억해 지녀서 잊지 않고 부지런히 정진하는 것이니라. 이와 같은 이치를 알아야 비로소 바른 생각이라고 하니 그러므로 분명히 알아라. 생각은 마음에 있는 것이요, 말에 있지 않느니라.

해설: 염불이란 부처님을 지극한 마음으로 잊지 않고 생각하는 것이다. 부처님 명호, 상호, 부처님 원력, 상주하시는 불국토 등이며 생각 생각에 잊지 않고 닮아가고 동일시하고 일체화되어가는 것이다. 어리석은 자는 부처님이 따로 있어 내게 소원을 성취시켜 주시는 부처님이요, 범인은 부처님의 원력을 실천하여 불국토에 왕생함이요, 수행자는 부처님이란 밖의 대상이 아닌 내 마음의 부처이니 자성불을 일깨워 귀의함이요, 가장 뛰어난 근기는 부처, 상호, 명호, 원력과 불국토 역시 내 자신의 업식의 환영임을 알아 구하여 집착하지 않는다. 부처란 이 모든 것을 비추어 아는 참나임을 안다. 이것이 곧 관심이며 염불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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