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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가슴으로 확신하고 몸의로 체득하라

 

본문: 문자를 쫓는 가운데 이해를 한 사람은 일을 만나면 눈은 어두워진다. 경전과 논서 가운데서 일을 이야기하는 것은 법에서 멀어질 뿐이니라. 비록 입으로 일을 말하고 귀로 일을 들으나 몸과 마음이 스스로 일을 따름을 알지 못함이로다. 만일 일에 즉하여 법을 즉 하는 자는 깊으니 세상 사람이 헤아릴 수 없느니라.

수도인은 자주 도적질과 물건을 박탈당해도 애착심도 없고 고뇌하지도 않느니라. 자주 다른 사람이 꾸짖고 욕하고 때리고 비방해도 고뇌하지 않느니라. 만일 이와 같이 이해한 자는 도심이 점점 강해지고 해가 가면 오래지않아 자연히 일체의 거역과 순종에도 도무지 무심이니라. 이러한 고로 일에 끌려 다니지 않는 사람을 대력보살이라고 말 할 수 있느니라.

문자나 언어 통해 ‘참나’ 이해하면

삶속 경계 만나 분별 집착 못 버려

해설: 문자나 언어를 통해 ‘참나’를 이해한 사람은 삶 속에서 경계를 만나면 무심한 마음은 문득 사라지고 경계에 끄달려 분별하고 집착하게 된다. 경전과 논서를 보며 시비를 논해봐야 아무 소용이 없다. 오히려 진실한 법의 뜻 즉 참나에서 멀어질 뿐이다. 보고 듣고 말하고 이해하나 이 모두는 법, 참나, 공, 무심이라는 환영을 만들 뿐이다.

이 환영으로는 더욱 집착과 확신이 강한 삶 속의 경계를 만나면 몸과 마음이 저절로 경계를 따라간다. 그러므로 욕망과 집착이 난무하는 이 삶 속에서 머리로 이해한 마음을 단련해서 가슴으로 확신하고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면 이익과 손해, 고통과 즐거움, 비방과 칭찬 등의 경계가 봄날의 아지랑이 같고 꿈과 같아 더 이상 집착하지 않게 된다. 이와 같이 나아가면 머지않아 일체처일체시에 참나와 하나가 되고 이런 수행자를 대력보살이라고 부른다.

◼ 달마사행론 - 21. 구역의 안과 밖이 다른 문

본문: 수도인이 마음을 장대하게 하고자 하면 반드시 마음을 구역 밖에 의탁해야 하느니라. 묻기를, 어떤 일들이 구역 밖이라 이름 합니까?

답하기를, 대·소승에 대한 이해를 바로 잡지 않고 보리심을 내지도 않으며 일체종지를 원하지도 않으며 선정을 이해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지도 않으며 탐욕인을 천하게 여기지도 않고 부처님의 지혜를 원하지도 않으면 그 마음이 자연히 한가롭고 고요해지느니라. 만일 어떤 사람이 이해를 취하지도 않고 지혜를 구하지도 않으면 이와 같은 사람은 법사이니 선사이니 등의 혹란을 벗어나고자 할 것이니라.

해설: 구역이란 우리의 업식을 말한다. 육근, 육경, 육식 일체 모두가 업식의 모습이다. 모름지기 수행자는 마음을 업식 내에 두어서는 안 된다. 견문각지의 대상이나 분별심을 떠나 견문각지하는 주체(참나)를 찾아가야 한다.

불·법·승 삼보와 대·소승, 보리심, 열반선정 등도 집착하지 말아야 한다. 이들 또한 참나에 비친 업식의 환영이기 때문이다. 그러면 마음은 참나와 하나가 되어 우주법계 두두물물을 비출 것이다. 이러한 수행자는 부처와 지혜도 구하지 않고 욕망과 집착을 취하지도 버리지도 않는다.

본문: 만일 능히 존재하는 마음의 뜻을 세워 범부와 성인을 원하지 않고 해탈을 구하지 않으며 다시 생사를 두려워하지 않고 지옥 또한 두려워하지 않으며 마음이 고의로 머무름이 없어야 비로소 규둔심(規鈍心)을 이루니라. 만일 일체의 현상이 백천겁에 신통변화 짓는 것을 보더라도 즐거이 원하는 마음을 내지 않는 이 사람은 다른 유혹을 면하고자 할 것이다.

해설: 만일 수행자가 하루속히 참나를 깨달아 시방법계 모든 중생을 제도하겠다는 아뇩다라삼먁삼보리심을 세워 범부와 부처, 윤회와 열반, 지옥과 극락을 구하거나 멀리하려 하지 않고 마음이 그 어느 대상에도 머물지 않으면 이 사람은 모든 업식으로부터 걸림이 없을 것이다.

규둔심이란 자신의 업식에 걸림 없는 마음이다. 제불보살의 신통변화와 시방세계 가득한 불국토 또한 구하지 않는다. 모두가 참나에 비친 업식임을 알기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 더 이상 둘이 아닌 나의 모습임을 알게 될 것이다.

출처 : 수미산 쉼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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