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禪)이란 무엇인가? 선은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이다.
인간의 생로병사를 고민하던 싯다르타 태자는 명상하여 불생불멸하는 진리를 깨쳤다. 이 깨달음으로 인류 역사에서 최초로 인간이 생로병사의 상대 세계에서 깨어나 영원한 행복의 절대 세계를 개척한 것이다. 부처님의 깨달음이 불교의 성립이고 출발이다.
부처님이 깨치기 이전에도 요가와 명상이라는 다양한 수행이 있었다. 부처님이 깨친 마음을 표현한 선(禪)은 범어로 디야나(dhya-na), 팔리어로는 쟈나(jha-na)로 기록되어 있다. 그런데 불교가 다른 지역으로 전해질 때 그 지방의 말로 표현되어야 했다.
“안으로 본성을 보아 어지럽지 않으니”
“그림자가 마당을 쓸어도 움직이지 않아”
디야나는 한자문화권에서는 선나(禪那)라 음사하였고 줄여서 선(禪)이라 한 것이다. 禪(선)이라는 문자는 한국에서는 선, 중국에선 찬(chán), 일본에선 젠(ぜん)이라 발음한다. 부처님의 깨달은 마음은 다양한 말로 표현되지만, 그 깨달음은 하나이다.
6조 혜능스님은 <단경> 좌선 편에서 이렇게 말한다. “안으로 본성을 보아 어지럽지 않은 것이 선이다.” 예컨대 선이란 마음이 혼란스럽지 않고 안정됨을 말한다. 6조의 제자 영가스님은 <증도가>에서 “다녀도 선(禪)이요 앉아도 선이니 말하고 침묵하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 본체가 편안함”이라 했다.
즉, 우리가 부처님이나 조사들처럼 깨치면 분주히 일상생활을 하더라도 마음이 편안하다는 말이다. 마조스님의 제자 대주스님은 이렇게 표현한다. “망념(妄念)이 일어나지 아니함이 선(禪)이다(<돈오입도요문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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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사 스님들의 말을 종합하면, 선이란 결국 특별한 그 무엇이 아니고 번뇌망념이 일어나지 않는 깨달은 마음을 말하는 것이다. 마조스님은 이것을 평상심(平常心)이라 했다. 그런데, 평상심이라 하니 화내고 욕심 부리고 술 마시고 남 욕하는 그대로가 평상시의 일이니 그대로 선이고 수행이라 하는 분도 흔히 본다. 그것은 아니다. 큰 착각이다.
성철스님 강설(증도가, 돈오입도요문론)에 보면, 우리가 이로움과 손실, 비방과 받듦, 칭찬과 비웃음, 괴로움과 즐거움이라는 팔풍(八風) 경계에 직면하더라도 마음이 여여해야 선이라고 한다. 즉, 선이란 나에게 팔풍이 거세게 불어 닥쳐도 가나 서나 앉거나 눕거나 말하고 침묵하거나 움직이고 고요하거나(행주좌와 어묵동정), 자나 깨나 꿈에서나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이것이 과연 가능할까? 누구나 의문이 생기고 의아스럽게 생각할 것이다. 남이 나를 욕하고 비웃고 내 것을 빼앗아 가고 헐뜯고 죽이려 하는 상황에서도 내 마음이 과연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단 말인가? 그런데, 부처님이 바로 그런 분이다. 부처님은 명상을 통해 선을 체득해서 그런 삶을 살고 가신 것이다.
부처님뿐 아니다. 달마, 혜능, 마조, 조주, 임제, 도의, 보조, 태고, 나옹, 서산, 사명, 경허, 용성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많은 역대 조사 선지식들이 그런 분들이다. 그러한 깨달음 세계, 경지를 선이라 표현하는 것이다.
우리 재가자들도 가정과 직장의 일상생활에서도 수많은 팔풍을 마주한다. 그럴 때마다 선을 해서 평상심을 유지하는 능력을 갖춘다면 얼마나 행복하고 자유롭겠는가. 가정과 직장, 사회에는 또 얼마나 도움이 되겠는가. 극락과 천당이 멀리 있는 것이 아니다. 바로 여기 선(禪)의 세계에 극락이 있다.
그래서 송나라 때 야보스님은 선의 세계를 이렇게 노래한다.
“대나무 그림자가 마당을 쓸어도 티끌이 움직이지 않고, 달빛이 물 바닥까지 꿰뚫어도 물에는 흔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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