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이야기

[스크랩] 이심전심(以心傳心

 

본문: 부처와 조사는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하였는데, 대개 모두는 투철하게 깨달아 벗어나서 마치 두 거울이 서로 비추듯 언어나 형상에 걸리지 않았습니다. 격식과 헤아림을 멀리 초월하여 화살과 칼끝이 서로 마주 버티듯, 애초에 다른 인연이 없어야만 도의 오묘함을 전수받아 조사의 법등을 계승할 수 있었습니다. 알음알이가 끊겨 사유를 벗어나고 정식(情識)을 뛰어넘어서 호호탕탕하게 통하여 자유자재한 곳에 도달하였습니다.

해설: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했다는 것은 참 묘한 말이다. 마음은 어디서부터 어디까지라는 근거가 없어서, ‘이거다’ ‘저거다’ 하고 규정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마음은 과거·현재·미래에 관계없이 꽉 차서, 남거나 모자람이 없는 것이다.

실로 그 형상이 없어서 크다고 할 수도 없고 작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을 억지로 이름 하여 ‘마음’이라고 했을 뿐인데, 불조께서는 어떤 근거로 ‘이심전심(以心傳心)’을 말한 것일까? 직접 깨달아봐야만 그 까닭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깨달음에 의해서만 드러나는 이 근본 입장이 없다면, 불법이나 불교는 성립할 수가 없다. 마음의 정체가 무엇인지, 왜 이심전심이라고 했는지 온몸으로 은산철벽을 타파하고 직접 그 실상을 밝혀내야만 비로소 모든 의구심이 사라질 것이다.

비유하면 맑은 거울을 놓고 서로 비추면, 다만 투명할 뿐 아무런 흔적도 없는 것처럼, 그 어떤 모양도 없는 이것을 어쩔 수 없이 이름 하여 ‘마음’이라고 한 것이다. 이것은 툭 터져서 사통팔달로 뚫려있기 때문에, 새삼스럽게 ‘자유자재’라는 말을 덧붙일 필요조차 없다. 이쪽도 저쪽도 없는데, ‘자유자재’가 어떻게 성립할 것인가.

늘 그 속의 일이어서 다른 것은 있을 수 없지만, 한편으로는 방편으로 ‘자유자재’라는 표현을 열어놓기도 하는 것이다. 이와 같은 불가사의하고 오묘하기 짝이 없는 근본실상을 수용하여 소화시키고 또 남들에게도 그 길을 열어줄 수 있어야, 비로소 수천 년을 이어온 법등(法燈)을 계승할 수 있을 것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