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에서 만족하는 자세가 삶의 완성
가까운 가족.직장 동료와 인연이 행복
현실에 적응하며 느끼는 자각이 자유
한국은 임제종 계열인 간화선이 주축을 이루는 반면 일본은 선종으로는 임제종.황벽종.조동종 등이다. 일본에서 선종의 큰 일파를 이루고 있는 종파가 조동종으로 종조가 도오겐(道元, 1200~1253)선사이다. 도오겐은 1223년 스승 메이젠(明全)과 함께 송나라로 들어갔다. 도오겐은 배에서 바로 내리지 않고 한동안 배안에서 머물며 송나라 사찰과 승려들의 동정을 살피고 있었다.
도오겐은 마침 일본 상인에게 표고버섯을 사기 위해 아육왕산에서 온 늙은 전좌(부엌일을 담당)스님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날이 어두워지자 도오겐은 전좌 스님에게 하루 묵기를 권했더니, 스님께서 말했다.
“내가 없으면 대중스님들의 공양에 차질이 생기게 됩니다.”
“스님 한 분 안 계신다고 공양에 무슨 큰 차질까지 생기겠습니까? 스님께서는 매우 연로해 보이는데, 좌선을 하든지 경전이나 어록을 보시면서 편하게 수행하셔도 될 것 같은데, 왜 힘들게 부엌에서 일을 하십니까?”
“이국에서 온 젊은이여! 그대는 아직도 수행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문자라는 것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것 같군.”
“그럼 수행이 무엇이며, 문자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그대가 질문하며 서 있는 발밑을 헛디디지 않으면 그 사람은 곧 진실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네.”
수행이 곧 삶이요, 삶이 곧 수행임을 보여주는 귀감이 되는 이야기다. 도오겐에게 이 전좌 스님은 평생 동안 잊지 못하는 스승 가운데 한 분이었다고 한다. 실은 이 전좌 스님은 내게도 도오겐 못지않게 존경하는 선사 가운데 한분이다.
근래에 존경받는 스님은 한 소식해야 하고, 세속의 학벌도 갖춰야 하며, 명함에 빼곡이 들어찬 프로필로 그 승려의 수행면모를 평가하기도 한다. 전좌 스님처럼 하찮은 부엌일조차도 수행이라 여기고, 자신의 수행보다 대중 수호를 방편으로 여기는 진실함이 부족한 것이 현 시대의 기류가 아닌가 싶다. 근현대 중국 선종의 선지식인 허운(1840~1959) 선사는 120세까지 살았다. 허운은 임제종의 법맥을 받은 선사였지만, 90여세의 고령에도 늘 밭에서 노동을 하셨고, 그 노동으로 얻은 이윤을 중생들에게 돌렸다.
우리는 수행이라는 것을 너무 멀리 지평선에 떠 있는 허공처럼 보는 것은 아닐까? 우리가 살고 있는 그 자리, 우리가 어떤 무엇을 하든 진실함을 잃지 않는 그 자리가 바로 수행의 도량이라고 본다. 내가 지금 서 있는 이 자리를 벗어나 어디서 도량을 찾을 것인가? 현실 있는 그대로가 참됨(卽事而眞)이요, 이 현실을 떠나서 진리를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제선사도 ‘가는 곳마다 주인이 되고 서는 곳마다 진리의 땅이 되게 하라(隨處作住 立處皆眞)’고 하였다. 즉 자신의 존재가치를 결정해 가면서도 현실 그대로에 적응하면서 그 자리에서 느끼는 진실된 자각이 자유(自由)라고 하였다.
재가자들의 삶도 마찬가지라고 본다. 행복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며, 미래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현재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만족하고 열심히 노력하는 진실된 자세가 삶의 완성이요,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멀리 있는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 아닌 늘 가까이 있는 가족, 매일 함께 일하는 직장 동료와의 진실한 인연이 행복이라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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