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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나는 누구이며 무엇인가

여러분들은 왜 불교를 믿습니까?

행복하기 위해서거나 마음을 평화롭게 갖기 위해서,

아니면 부처님이 깨달으신 그 무엇인가가 좋아서일 것입니다.

행복이 무엇입니까?

모두들 행복하기 위해서 불교를 믿고 공부하는데, 어떻게 되어야 행복하다는 생각이 듭니까? 해탈, 고통의 소멸, 근심 걱정이 없는 상태, 그 무엇에도 걸림이 없고 자유로운 상태, 이런 것을 행복한 상태라고 합니다.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노력을 합니다. 그런데 어떤 상태가 행복한 상태일까요? 보통은 돈이 많으면 행복하겠다고 합니다.

그래서 돈을 벌려고 노력합니다.

돈이 많아야 좋은 아내, 좋은 남편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과연 돈이 많으면 행복할까요?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행복입니다. 잠시 있다가 없어지는 행복이 아니라

부처님 가르침을 완전히 이해하고 몸으로 체득하는 것입니다.

그냥 왔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고

영원히 죽을 때까지 행복한 상태로 머무는 궁극적인 행복입니다.

이것을 해탈이라고도 하고, 성불, 또는 깨달음이라고도 합니다.

그 경지에 들어간다는 것은 영원한 행복, 궁극적인 행복에 도달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더 바랄 것이 없는 상태, 더 채울 것이 없는 상태가 궁극적인 행복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항상 무엇인가를 바라고 있습니다.

이것 외에 추구하는 또 다른 무엇이 있고 그것을 채우려고 합니다.

그것이 채워지면 행복하고 마음이 편안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처럼 욕망하는 것이 있으면 그것은 행복한 상태가 아닙니다.

내가 돈이 많든 적든, 남들하고 비교하지 않고 지금 현재 이 자리에서

이 상태로 좋은 것, 이것이 행복한 상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항상 생각이 다른 데에 있습니다.

 

현재 내가 서있는 이 자리는 자신이 선택한 것입니다.

누가 돈 준다고 여기 온 것이 아닙니다.

내가 원해서 온 것이기에 이 자리에서 만족하면 그것이 행복한 상태입니다.

이것이 더 채울 것도 없고, 더 바랄 것도 없는 행복입니다.

 

모든 행·불행은 대부분 인간관계에서 느낍니다.

돈이 행복의 전부는 아닙니다. 일반적으로

불행과 고통, 괴로움을 느끼는 것은 대부분 인간관계입니다.

나와의 관계, 이해관계에 따라 그 사람이 나의 행·불행에 관여하는 폭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행복이란 저 멀리에 있어서 열심히 좇아야 하는 것 같지만

나를 둘러싸고 있는 반경 안에 있는 최고 가까이 있는 사람들에 의해서

나의 행과 불행이 좌지우지 됩니다.

부처님이 행·불행을 좌지우지하는 것 같아도 절대 아닙니다.

더 채울 수 없는 상태가 되려면 내 자신을 봐야합니다.

남편을 보거나 아내를 보는 것이 아니라 내 자신을 먼저 봐야합니다.

그래야 내가 어디에 얽매여 있는지,

어떤 말에 화가 나고 또 마음이 기뻐지는지를 볼 수가 있습니다.

보통 사람들은 남편 때문에, 자식 때문에 내가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수도 있지만,

그것이 많은 요인을 차지하는 것은 아닙니다.

결국 내 자신이 어떤 상태로 있는가를 바라볼 때 행·불행이 갈라집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남을 볼려고 하지 말고 나를 보라고 한 것입니다. ‘

나를 잘 알아라, 나를 바로 보아라, 나란 놈이 뭐냐.’ 이것을 공부하는 것이 불교입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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