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각기관서 비롯되는 고민의 총합

육조혜능 “번뇌가 곧 보리(깨달음)”

‘108’은 불교를 대표하는 숫자다. 많은 불자들이 휴대폰 뒷자리 번호로 ‘0108’이나 ‘1080’을 쓰고 싶어 한다. 108번뇌의 108이다. 그만큼 인간의 번뇌가 수없이 많다는 뜻이다. 얼핏 108가지 희로애락을 가리키는 듯하다. 사실 108번뇌는 인간의 감각기관에서 비롯되는 고민의 총합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느낀 만큼이 생각한 만큼이 고통이다.

육근이란 감각기관과 육진이란 감각대상이 서로 마주칠 때 육식이 일어난다. 육근(六根)은 눈·귀·코·혀·피부·뜻(眼·耳·鼻·舌·身·意, 안이비설신의). 육진(六塵)은 색깔·소리·냄새·맛·촉감·법(色·聲·香·味·觸·法, 색성향미촉법)이다. 육근이 육진을 만나면 먼저 ‘좋다(好)’·‘나쁘다(惡)’·‘그저 그렇다(平等)’는 세 가지 ‘인식작용(느낌)’을 일으킨다.

다시 좋은 것은 즐겁게 받아들이고(樂受), 나쁜 것은 괴롭게 받아들이며(苦受), 그저 그런 것은 즐겁지도 괴롭지도 않게 방치하는(捨受) 마음이 생긴다. 곧 육근과 육진의 하나하나가 부딪칠 때 좋고(好)·나쁘고(惡)·평등하고(平等)·괴롭고(苦)·즐겁고(樂)·버리는(捨) 여섯 가지 감정이 나타나며, 6×6=36, 즉 서른여섯 가지의 번뇌가 생겨나게 된다. 이러한 36번뇌는 과거에도 현재에도 미래에도 끊임없이 유전한다. 그러므로 36에 과거·현재·미래의 3을 곱하여 108번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또 하나의 산출법은 이보다 심도가 더 깊다. 견혹(見惑)인 88개의 번뇌와 수혹(修惑)인 10혹(惑), 부수적인 번뇌인 10전(十纏)을 합해 얻는다는 설이다. 견혹이란 사고·지식·인식 작용에 바탕을 둔 번뇌를 뜻한다. ‘나’ 또는 내것이 실재한다고 여기는 신견(身見), 사물을 한쪽만 보는 변견(邊見), 인과(因果)의 이치를 믿지 않는 사견(邪見), 자기가 긍정한 것에 집착하는 견취견(見取見), 싫은 것은 무조건 끝까지 싫다고 하는 계금취견(戒禁取見) 등이다. 견혹은 비교적 끊기가 쉽다. 지금 가지고 있는 소견이 잘못된 것인 줄만 깨달으면 곧 없어진다.

반면 오랜 수행을 통해서만 절명이 가능한 번뇌가 수혹이다. 태어남과 동시에 따라오는 정서적·의지적·충동적 번뇌이다. 탐욕의 탐(貪)ㆍ분노의 진(瞋)ㆍ어리석음의 치(癡)ㆍ나태할 만(慢)ㆍ의심할 의(疑) 등 다섯 가지다. 이러한 가점이 현상계와 만나면서 10개의 수혹을 야기한다. 십전(十纏)은 다음과 같다. 전(纏)은 전박(纏縛) · 속박(束縛) · 구속(拘束) · 얽매임 · 얽어맴의 뜻으로, 번뇌의 다른 이름 가운데 하나이다. 번뇌가 몸과 마음을 구속해 올바르고 자유로운 판단을 교란시켜 선(善)을 닦는 것을 방해하는 번뇌를 일컫는다.

불교에서는 108번뇌에 특별한 의미를 둔다. 108개의 나무 알을 꿰어 108염주를 만들고, 이를 돌리면서 번뇌를 멸하고 해탈을 꿈꾼다. 108개 하나하나의 번뇌를 세어보는 일은 일견 무의미하다. 어찌 보면 살아있다면 생각할 수밖에 없고 생각하는 그 자체가 고통인 것이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생각마저 번뇌의 씨앗인 법이다.

어쩌면 생각이 일어나도록 내버려두는 것도 또 다른 길이 될 수 있다. 6조 혜능은 “번뇌가 곧 보리(깨달음)”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