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법이야기

[스크랩] 정진하라

부처님은 세세생생 어디서나 즐겁게 정진

이번 생도 중생 제도하시느라 쉬지 않아 

정진은 말 그대로 ‘열심히 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18불공법 가운데 일곱 번째에 언급했던 ‘하려는 마음(欲, 의욕)’과 같은 뜻으로도 보이는데, <대지도론> 제26권에서는 그 둘의 차이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무엇인가를 하려는 마음(欲)은 처음 행하는 것이요, 그 하려는 마음이 불어나는 것을 정진이라 한다. 어떤 사람이 목마를 때 ‘물을 먹고 싶다’라고 바라는 것이 ‘하려는 마음(欲)’이요, 온갖 수단과 방편을 써서 물을 구하는 것이 ‘정진’이다. 마음으로 얻고자 바라는 것을 ‘하려는 마음(欲)’이요, 그 일을 이루는 것을 ‘정진’이라 한다. ‘하려는 마음’은 뜻으로 짓는 업(意業)에 속하고, ‘정진’은 몸과 입과 뜻의 세 가지 업에 두루 속한다. ‘하려는 마음’은 안(內)이요, ‘정진’은 밖(外)이다.”

불교에서는 정진을 매우 귀하게 여깁니다. 특히 대지도론에 따르면, “정진은 모든 부처님이 좋아하신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경우, 정진의 힘으로 말미암아 9겁을 훌쩍 뛰어서 위없는 바르고 원만한 깨달음(아뇩다라삼약삼보리)을 재빨리 얻으셨다”고 할 정도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마지막 열반의 자리에서도 중생구제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대반열반경>에서는 사라쌍수 아래 누우신 부처님을 친견하겠다고 조르는 수발타(須跋陀, Subhada)가 등장합니다. 아난다 존자가 막아서지만 부처님은 그를 다가오게 합니다.

“수발타를 들어오게 하여라. 그는 내 마지막 제자다.”

부처님의 마지막 자리에서 가까스로 가르침을 청해 들은 수발타는 모든 의심을 끊고 아라한이 된 뒤에 부처님보다 먼저 무여열반에 들었습니다. 이 과정을 지켜본 제자들이 찬탄했습니다. “참으로 드문 일입니다. 세존께서는 마지막까지 저 바라문을 가엾게 여기셔서 그와 이야기를 나누셨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이 세상에서만 최후의 자리에 사람들을 제도한 것은 아니다. 전생에 내가 아직 도를 얻지 못했을 때에도 나는 목숨을 버려서까지도 중생을 제도했었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부처님이 아직 보살이었을 때의 일입니다. 울창한 숲에 수많은 동물들이 모여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들불이 일어났습니다. 도망칠 곳이라고는 딱 한 방향 밖에 없었는데 그곳에는 거대한 강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너무 깊고 물살이 세서 동물들은 건너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때 보살(부처님)은 아주 몸집이 크고 힘이 센 사슴왕이었는데, 이 사슴왕은 몸을 늘여서 앞다리는 강 이쪽 언덕에 버티고 뒷다리는 강 건너편 언덕을 디뎠습니다. 그러자 동물들은 사슴왕의 등을 밟고서 강을 건넜습니다. 수많은 동물들이 거친 발굽으로 밟고 건너자 사슴왕의 등가죽은 벗겨졌고 피가 흘렀습니다. 하지만 중생을 사랑하고 가엾게 여기는 힘으로 참고 버텼습니다. 그런데 거의 죽을 지경이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토끼 한 마리가 달려왔습니다. 사슴왕의 힘은 이미 바닥이 나버렸지만 굳세게 버티고 견디면서 그 마지막 토끼를 무사히 건너가게 했습니다. 그리고 그 토끼가 강을 건넌 순간 등이 부러져서 그만 사슴왕은 물에 빠져 죽고 말았습니다.

목숨을 걸고 숲속의 동물들을 건네준 사슴왕이 바로 지금의 석가모니 부처님이요, 그 등을 밟고서 피안으로 건너간 동물들이 부처님의 모든 제자들이요, 마지막으로 다급하게 달려온 토끼 한 마리가 수발타 바라문이었습니다.(대지도론 제26권)

부처님은 세세생생 어느 곳에서나 즐겁게 정진하셨고, 이번 생에도 이처럼 중생제도하시느라 정진을 쉬지 않으셨으니 이런 까닭에 부처님의 정진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합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