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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날마다 좋은날 만들어 갑시다

올해는 잔나비’라고도 불리는 ‘원숭이’해로써 병신년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고 있는 광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개념화하여 나타내는 간지(天干 : 육십갑자의 위 단위, 地支 : 아래 단위)와 절기(節氣 : 한 해를 스물넷으로 나눈 것)로 구분한 것입니다. 그것은 시종(始終)을 알 수 없는 시공간에 대해 막연한 두려움이나 억측에서 벗어나, 삶을 예측하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지게끔 우리의 인식하에 두는 하나의 약속된 방법입니다. 시시때때로 변화하는 자연 현상을 ‘원숭이, 양, 토끼’ 등과 같은 동물로 상징성과 그 의미를 부여해 인식하는 것이며, 또 자연현상을 관찰하고 이해해 ‘동지, 입춘, 우수’ 등의 절기로 나누면서 조화로운 삶을 스스로 만들어 가게끔 한 것입니다. 나와 우주는 별개가 아니라 유기적인 관계라는 사실을 내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언제 어디서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행동하고 말하더라도 그 속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이라는 시간과 동서남북이라는 공간 속에서 동일하고도 지속적인 삶이 스스로의 결정에 의해 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나 혹자는 삶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어느 순간 절대타자에 의해 통제되거나 조절되는 것으로 여기고, 또는 인간의 의지와 아무런 관련 없이 예정된 것으로 이해하기도 합니다. 이것은 현재의 지구가 45억년의 진화를 거쳤다는 자연과학적인 견해와도 상충되는 것으로 우리의 삶은 자신에 의해 스스로 창조돼 가는 것입니다. 이것을 선인락과(善因樂果), 악인고과(惡因苦果), 자업자득(自業自得) 등으로 표현합니다. 이 말은 ‘자신의 행위에 의한 결과는 결국 자신이 되돌려 받으며, 그 행위에 합당한 결과가 따른다’는 지극히 자연스러운 이치를 나타내는 것입니다. 환언하면 원하는 것을 얻으려고 할 때, 그에 합당한 행위가 병행돼야 하는 것과 같아서 길흉화복은 결국 본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입니다. 단지 그 원인과 결과의 관계 속에서 더디고 빠른 차이에 따라 때로는 가슴을 쓸어내리거나 환희하고 또는 망각하거나 불신 할 뿐이지만, 그 이치는 물체에 그림자가 따르듯 분명하고 자명합니다.

   
 

<법구경>에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남을 때리면 얻어맞고, 원한 살 짓을 하면 원한을 사게 되고 남을 욕하면 욕을 먹고 성을 내면 남도 네게 성을 내리라” 또 “요사스러운 사람도 복을 만난다. 그 악행이 익지 않을 때까지는, 그러나 그 악행이 익음에 미쳐서는 스스로 죄를 받아야 한다. 상서로운 사람도 재앙을 만난다. 그 선행이 익을 때까지는, 그러나 그 선행이 익음에 미쳐서는 반드시 그 복을 받게 된다.”

매번 새해 벽두에는 저마다 새로운 각오와 다짐을 할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성취시키기 위해 다양한 노력도 겸할 것입니다. 한편으로는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며 아쉽고 후회스러운 일에 반성과 참회를 할 것이며, 만족스러운 성취에 대해서는 뿌듯함과 즐거움을 느낄 것입니다. 이렇듯 우리는 각자의 삶에 있어서 스스로를 결정짓고 평가하는 주인공입니다. 따라서 그 어떤 것과의 비교에서도 최우선시되는 ‘자기’라는 존재이기 때문에 때로는 우열과 경쟁 속에서 타인이나 대상과 비교되며 갈등을 빚기도 합니다.

흔히 ‘혈연, 지연, 학연’ 등의 인연 속에서 ‘나이, 외모, 재산, 학력’ 등의 개별적인 업을 기준으로 평가하지만, 시야를 ‘내’가 아닌 ‘우리’로 넓힌다면 ‘고립돼 경쟁하는 내’가 아니라, ‘더불어 조화된 우리’라는 사실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통합된 견해’가 아닌 ‘분별적인 사고’로 저마다의 관점에서 12간지를 바라볼 때 어쩌면 ‘올해는 좋고, 내년은 나쁘다’는 식의 단순 이분법적인 생각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다를 수도 있다’는 폭넓은 사고가 아닌 ‘옳다, 그르다’식의 편벽된 판단으로 어떻게 우리 삶의 터전인 시간과 공간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동쪽은 서쪽이 있어야 가능하듯이 내가 있다는 말은 남이 있다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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