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보리 ‘진리의 부처’ 가장 먼저 알아봐
‘육신의 부처’에게 공양은 세력 부리기
석가모니 부처님에게는 뛰어난 제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우리 한국의 불자들에게 친근한 제자로 수보리 존자가 있습니다. 공의 이치를 이해하기로 으뜸이라는 명성답게 수보리는 해공(解空)제일로서 금강경의 주인공으로 등장합니다.
그런데 수보리에게는 또 하나의 칭찬이 따라붙습니다. 바로 무쟁삼매(無諍三昧)를 얻은 것으로 으뜸가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대지도론 제11권에 따르면, 무쟁삼매란 늘 중생을 관찰하되 마음에 번민이 없으며, 연민에 의거하여 행동하는 것으로서, 보살이라면 이처럼 중생을 구제하겠다는 큰 서원을 세우고 이웃과 모든 생명체를 연민심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것입니다. 수보리 존자는 공(空)을 깨닫기로 최고일뿐더러, 모든 이들을 바라보는 눈길에 연민이 가득 차 있되 제 마음에는 번민이 없는 경지로 으뜸가는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런 수보리에게 몇 가지 일화가 있으니, 가장 유명한 것이 바로 도리천에서 안거를 지내고 내려오시는 부처님을 마중하는 일입니다. 일설에 부처님은 어머니 마야왕비에게 법을 설하기 위해 도리천에 올라갔다고 하지요. 그런데 부처님이 떠나시자, 제자들은 세상이 텅 빈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언제쯤 오시겠습니까?” 제자들의 성화에 못 이겨 부처님은 아무 날 아무 시에 도리천에서 지상으로 내려가겠노라고 고했습니다. 약속한 날짜가 다가오자 지상에서는 환영분위기가 달아올랐습니다. 저마다 지상으로 처음 발을 내려딛는 부처님을 가장 먼저 맞이하는 영광을 차지하려 경쟁했습니다.
영광은 연화색비구니가 차지했습니다. 연화색비구니는 여자의 몸으로 나서기가 뭣했는지 전륜성왕과 칠보로 장엄한 1000명의 태자로 제 몸을 변화시켰습니다. 이 막강한 위엄 넘치는 환영대열을 보자 사람들은 슬그머니 자리를 피해 떠나버렸지요. 본래의 몸으로 돌아온 비구니는 부처님께 절을 올렸습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입에서 나온 대답은 뜻밖이었습니다.
“지상에서 나를 처음 맞이한 사람은 그대가 아니라 수보리다. 나는 그의 마중을 이미 받았다.” ‘환영인파에 모습을 전혀 보이지 않는 수보리가 언제…?’ 연화색비구니가 고개를 갸웃했나 봅니다. 부처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수보리는 세상의 모든 사물이나 이치가 자기성품이 텅 빈 것임을 관찰하기로 으뜸인 제자이다. 그대를 비롯해 무수한 사람들이 육신의 부처를 맞이하려고 이렇게 나섰지만 정작 가장 환영을 받아야 할 부처는 바로 진리 그 자체가 아니겠는가. 수보리는 진리로써 몸을 이루고 있는 법신인 부처를 가장 먼저 알아보고 반갑게 맞이한 사람이다. 이곳에서 떨어진 석굴에 있다 하지만 그는 공의 이치로 법신의 부처를 환영하였다. 세상 모든 것의 자기성품이 텅 빈 것인 줄 관찰하는 일이야말로 부처에게 올릴 수 있는 가장 소중한 공양이 아니겠는가.”
사실 수보리는 석굴에 앉아서 공삼매에 들어 있다가 부처님을 맞이하러 나서려 하긴 했습니다. 그러다 생각을 달리한 것이지요.
“내가 진정으로 맞고 싶은 부처는 육신의 부처인가, 진리의 부처인가.” 이런 생각 끝에 석굴에 그대로 머물러 앉아 공삼매에 들어 있는 것이 진정으로 부처님을 맞이하는 일이라 판단하고 굳이 환영하러 나가지 않았던 것입니다.
육신의 부처에게 공양 올리려는 마음은 세력을 부리게 마련입니다. 하지만 부처님은 그게 무슨 의미가 있냐고 되묻습니다. ‘진정 내가 맞이하려는 부처란 무엇인지’를 반성하고 생각하는 사람이야말로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는 사람이라는 말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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