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님이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며칠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는 도를 모르는구나.”
다시 다른 사람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예, 밥 한끼 먹는 사이에 있습니다.”
“그대도 도를 모르는구나.”
세 번째로 다른 사문에게 물으셨다.
“사람의 목숨이 얼마 사이에 있는가?”
“예, 숨 한 번 쉬는 호흡지간에 있습니다.”
“장하다. 그대는 도를 알았구나.”
이상의 이야기는 인명의 무상을 절실히 느낄 때 도에 빨리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을 말하면서 이것이 수행자들의 수행관으로 연결되는 것임을 말하고 있다.
“사람은 태어남으로부터 늙음에 이르고 늙음으로부터 병에 이르고 병으로부터 죽음에 이른다. 그 괴로움은 한량이 없다. 마음은 괴롭고 죄는 쌓인다. 그러면서도 생사는 쉬지 않고 계속되니 그 괴로움은 이루 다 말할 수 없다.”
35장에 나와 있는 이 말은 인간의 괴로운 상황을 설명하면서, 하늘과 땅, 산과 냇물 등 천지만상 모든 것이 하나 같이 무상하지 않은 것이 없다 했다.
무아를 설한 대목도 있다. 몸속의 사대 곧 지(地), 수(水), 화(火), 풍(風)의 화합물인 이 몸뚱이를 ‘나’라고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깨우쳐 주면서, 몸에 집착하면 애욕이 생기고 애욕으로부터 근심이 생긴다 하였다. 애욕은 칼날에 묻은 꿀과 같으며, 또 불에 손을 데는 것과 같다 하였다. 또 깨달음의 길을 꾸준히 정진해 나가가는 것이 뗏목이 강의 양쪽 기슭에 닿지 않고 흐르는 것과 같아야 한다는 비유를 설하면서 중도의 이치를 밝혀 놓은 대목도 있다. 그리고 수행을 극단적으로 하지 말고 자신의 근기에 맞춰 적당하게 해야 하는 것이 거문고 줄을 고르는 법과 같다는 조현지법(調絃之법法)을 설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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