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법이야기

[스크랩] 불교의 가르침

2500여 년 전 불교가 시작될 때는 한 말씀도 없었다. 거기엔 깨달으신 진리만 있었다. 그 진리를 처음 깨달으신 부처님께서는 일곱 그루의 나무아래를 옮겨 앉으시며 49일간 깊은 사유에 드셨다. 처음엔 침묵에 드시기로 잠정적인 결론을 내리셨다. 이것은 진리만을 보셨던 시간이었다.

하지만 곧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에 빠져 있는 사람들에게 생각이 미치셨다. 진리 그 자체를 사람들에게 줄 수는 없으나 적어도 진리를 볼 수 있도록 도울 수는 있겠다고 생각하셨다. 그래서 “물 위에 올라왔어도 피지 않은 연봉오리나 아직 물속에 있는 연봉오리는 햇볕과 바람이 필요하듯이, 깨닫지 못한 중생들에게는 나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라고 생각하셨다.

49일간의 사유가 끝나고 중생을 교화하기로 결정하신 부처님께서는 그로부터 45년간이나 수많은 사람들을 깨달음으로 인도하셨다. 이렇게 부처님의 가르침이 나왔다. 이것이 침묵 다음에 두 번째로 있게 된 ‘말씀’이다. 사람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며 열심히 수행에 임하였다. 부처님께서 세상에 계실 때에는 이 말씀들을 엮어서 외울 필요가 없었다. 풀리지 않는 문제는 부처님을 만나 뵙고 여쭈어보면 되었던 것이다.

석가모니께서 세상에 계실 때는 그 분이 곧 깨달음의 나무인 보리수(菩提樹)였다. 사람들은 부처님의 그늘아래에서 삼매에 들었고, 온갖 것들로 가득 차서 복잡했고 답답했던 마음이 텅 비었다. 그리고는 거울에 영상이 비치듯 빈 마음에 세상 모든 것들이 왔다가 저절로 사라져버리는 특별한 체험들을 하게 되었다. 바로 절대적인 자유인 해탈(解脫)에 이른 것이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 뒤 제자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잊지 않고 세상에 전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래서 첫 번째로 행위에 대한 지침인 율(律)을 정리하였고, 다음으로는 깨달음에 이르는 길인 경(經)을 정형화했다. 율(律)과 경(經)은 무수한 노력 끝에 이루어지긴 했으나 부처님께서 가리키시던 ‘그 무엇’이 아니라 ‘그 무엇’을 가리키던 손가락이었다. 만약 ‘그 무엇’을 본 사람이라면 손가락에 연연하지 않겠지만, 아직 보지 못한 이들에게는 손가락보다 더 중요한 것도 없다. 그래서 손가락에 대한 연구가 시작된다. 그리고 ‘그 무엇’에 대한 것도 논리적으로 규명하려는 이들이 나타나게 되었다. 그래서 세 번째로 논(論)이 형성되기에 이른다.

삽화 박혜상

논(論)이 형성되는 과정에서 수행자들은 서로의 생각이 다름을 확인하게 되고, 결국 부파(部派)로 나뉘었다. 각 부파들은 자기들이 가장 뛰어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확립하려고 했고, 능력이 뛰어난 수행자들은 논리적인 주장을 체계화했다. 그리하여 수행자들은 대부분 일반인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전문가가 되었다. 스님들은 문제를 안고 가면 쉽게 풀어주시던 예전의 석가모니부처님과는 다른 모습이었다.

그때쯤 불교는 철학적이며 사변적인 학파들을 형성하게 되지만, 한편으로는 부처님께서 가리켜 보이시려했던 ‘그 무엇’은 점차 논리적이며 난해한 언어들로 인해 대중으로부터 멀어지고 있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했던 수행자들은 부처님의 근본으로 돌아가자는 움직임을 보이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대승불교운동이다. 그들은 부처님의 가르침을 재정립하기 시작했다. 한편 부처님의 향기를 그리워했던 사람들은 부처님의 흔적을 찾아다니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되새기는 방식을 택했는데, 그렇게 보리수(菩提樹)와 사리탑을 중심으로 모이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움직임의 주체들은 자신들을 부처님처럼 깨달음을 추구하면서 한편으로는 타인을 이롭게 하는 사람들이라는 뜻의 ‘보디사트바(Bodhisattva)’ 즉 보살(菩薩)이라고 지칭했다. 대승불교의 경전에는 이 보살의 길이 갖가지로 설명되어 있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