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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나’라는 한계·욕심 떨친 대자유 경지

“대중 여러분께서는, 방금 산승이 말한 그 주인공을 아시겠습니까?

 이 주인공은 천지만물(天地萬物)의 근본이요, 

일체중생의 마음자리입니다. 

이 근본자리는 텅 비어 고요함이나 분명하고 분명한 자리입니다. 

온갖 망령된 생각들을 즉각 내려놓는다면, 

바로 그 자리가 본래의 마음자리며 본래의 참모습인 것입니다. 

미혹하면 중생이요, 항상 밝아 있으면 부처이기에,

 범부와 성인이 근본자리에서는 둘이 아님이요, 

그대로 광명이요, 생명이요, 평화요, 대자유입니다. 

그렇기에 누구든지 마음을 깨달아 ‘참나’를 찾으면 영원한 행복과 대지혜를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부모미생전(父母未生前) 본래진면목(本來眞面目)’에서 유래한다.

 본래진면목이 바로 ‘참나’다. 곧 ‘부모에게서 태어나기 전 나의 진정한 모습은 무엇인가’라는 

뜻으로 한글로 간결하게 풀어낸 개념이다. 

진정한 나는 육체나 느낌이나 생각에 있지 않다는 게 선사들의 한결같은 가르침이다. 

오직 화두를 매개로 선정(禪定)에 들어 심오한 내면까지 파고들어야 만날 수 있다. ‘

부모에게서 태어난 나’란 육신으로 존재하는 나를 의미한다. 

그리고 육신에 집착하며 몸뚱이를 먹여 살리기 위해 애써 일하고

 남을 속이면서 스스로를 반복적으로 괴롭히는 게 중생의 삶이다. 

반면 예하는 간화선을 통해 유한하고 무상한 가아(假我)를 벗어나

 부처인 자기 자신의 본질을 깨우쳐야 한다고 강조한다. 

그래야만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개인적인 안락부터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문제까지, 모든 해법이 ‘참나’로 귀결된다. 

남북화해와 세계평화는 매우 막연하고 난해한 과제인 듯 보이지만 

문제의 시초는 결국 몸뚱이로서의 ‘나’와 몸뚱이로서의 ‘너’의 대립과 갈등이다. 

참선에 힘입어 모두가 가아를 내려놓을 수 있다면 대승적인 평화와 화합은 저절로 이뤄진다. 

육신으로서의 나는 욕심내고 분노하고 그래서 어리석음을 반복한다. 

남을 도와야 내가 이로운 이치를 모르고 끊임없이 채우려 들고 

그래서 세상과 다투면서 기력을 소진한다.

 더구나 유한하다. 허기와 반목의 끝은 누구에게나 죽음이다. 

반면 참나를 깨달으면 육신으로서의 나를 극복할 수 있다. ‘

나’를 떨치면 삼라만상이 ‘나’다. 나를 괴롭히는 것들조차 

나이니 모두를 너그럽게 포용할 수 있다.

 몸뚱이의 욕망에 휘둘리지 않으며 몸뚱이의 처지에 개의치 않는 

대자유인의 안목이 열리게 된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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