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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법이야기

[스크랩] 불교 열반 해탈에 대하여

열반이라고 하는 것은 탐··치 삼독(三毒)이 다 끊어져 없어진,

 지극히 고요한 적멸(寂滅)의 위락(爲樂)을 말한다.

즉 불생불멸(不生不滅)하여 상주불멸(常住不滅)인 우주의 자성자리(法身)’로서

그 뜻이 무한히 크므로 무엇이라고 우리말로 번역할 수 없어 그대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성불(成佛)한 부처님이나 조사의 죽음은 생사(生死)가 없는

본래 자기자성(自己自性) 자리인 열반 그대로 있다는 뜻이다.

 즉 탐진치 삼독에 얽혀 생사에 윤회하는 것이 아니고 귀일(歸一)하는 뜻으로

 열반이라고 하는 것이다.

  부처님 몸은 삼신(三身)이다. 법신(法身) 보신(報身) 화신(化身) 세 가지 몸으로 되어 있다.

법신은 곧 열반으로서 우주의 진리를 말하는 것이다.

이 법신은 생사를 초월한 만유의 자성으로서 상주불멸의 영원한 진리다.

즉 우주의 진리가 부처님의 법신이다.

그러므로 만물의 모든 개체(個體)가 다 부처님의 경지에서는

다 법신(法身)하나로 되어 있다.

부처와 중생이 법신의 경지에서는 하나인 것이다.

 누구나 다 법신의 평등성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보신(報身)은 수도하여 자성을 깨달으면 지혜가 생긴다.

지혜는 마음의 광명(光明)이다. 보신은 곧 마음의 광명을 말하는 것이다.

법신과 보신은 볼 수 없는 것이다.

마음 가운데 있는 우주의 진리는 눈으로 볼 수 없고

또 마음 가운데 지혜는 보이지 않는다.

보이지 않는다고 우주의 자성자리인 열반이나

마음에서 생기는 지혜가 없는 것이 아니다.

 화신(化身)은 중생을 교화하기 위해서 중생세계에 인연으로

 화신한 육신을 말하는 것이다.

 화신은 인연으로 나왔다가 인연이 다하면 다시 없어지는 것이다.

중생은 인연이 다하면 다시 생사의 윤회길로 가지만

 부처님의 화신은 인연이 다하면 열반으로 다시 귀일(歸一)하는 것이다.

그러나 부처님으로서는 새삼 열반에 귀일할 것도 없는 것이다.

땅에 물이 있으면 스스로 중천(中天)에 있는 달그림자가 나타났다가

그 물이 없어지면 달그림자는 없어지지만 중천에 있는 달이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을 보고 하는 말이 내가 열반 후에 나를 열반에 들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아니고 또 열반에 들지 안했다고 해도

나의 제자가 못된다고 하였다.

부처님은 상주불멸(常住不滅)로써 각자 마음 가운데 다 있는 것이다.

각자가 삼독에 얽혀 자기 부처를 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마치 땅에 있는 물이 흐려서 달빛을 보지 못하거나 또 물이 있다 없다 하는데

 따라 달빛이 변경되는 것과 같이 중생의 신심에 따라

 부처님을 보고 못 보는 차이가 있는 것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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