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이야기

[스크랩] 삭발과 다짐

부처님 구도여행의 첫걸음이자

대중에게 결심 표출하는 매개

새해가 밝았다. 그러나 희망으로 가득 차야할 가슴은 그러질 못했다. 미래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 때문일까? 해를 거듭할수록 쓸쓸함은 더하고 마음은 헛헛하기만 하여 뭔가 의욕을 불러일으킬만한 것의 필요성을 절절히 느끼는 시기가 연말이다. 이번 연말연시엔 내내 삭발을 하지 않고 지냈다. 그래봤자 열흘 남짓 긴 머리. 손끝에 잡히지도 않는다. 그런데도 정신을 차린 순간, 내게는 그 머리가 어찌나 폐인처럼 보이던지 헤어스타일만 보면 죄수가 따로 없었다. 출가자에게는 무명초라 불리는 머리카락의 실상이 이러하다. 너무 빡빡 깎은 민머리 속살은 오히려 혐오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도 있지만, 텁텁한 머리는 그저 답답하고 나태하다. 삭발을 단정히 하고 나서야 나는 비로소 마음을 가다듬고 새해임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머리를 깎는다는 것의 의미는 이렇듯 늘 단호하고 새롭다. 출가라고 하는 행위를 굳이 예로 들지 않고도 삭발의 의미는 다양한 변화와 각오를 상기시킨다. 고시나 재수를 준비하는 수험생들의 숏컷(short cut)이 그러하고, 감옥의 죄수들을 삭발시키는 것 또한(다른 이유가 있겠지만) 참회하고 새사람이 되라는 게 아닐까 싶다. 또 연인과 헤어져 미용실을 찾을 때, 사회적 갈등과 불화로 인해 삭발을 감행할 때도 그렇다. 뭔가 마음에 결심한 바가 있거나 변화를 주고 싶을 때, 우리는 머리를 짧게 깎거나 삭발을 함으로써 자신의 결심을 대중에게 표출한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나 헤어스타일의 변화는 도전과 각오의 상징이었다.

부처님도 그러셨다. 고통에 가득 찬 세상을 직시하고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기 위해 낡은 사상을 거부하고 떠날 때, 우선 머리부터 깎았다. 진지하게 구도여행을 떠나는 첫걸음이 머리카락을 자르는 일에서 비롯되었다. 승가를 형성하고 제자를 두었을 때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비구가 되어 수염과 머리를 깎고 가사를 수하고, 바른 믿음으로 도(道)를 배웠다. 그렇게 부처님의 혜명(慧命)을 잇는 이들이 2500여 년이나 지속되었다.

그럼 부처님 당시에는 어떻게 삭발을 했을까? 지금처럼 말끔하게 깎았을까? 물론 아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쿠라(khura)’라고 하는 삭발용 칼이 있어서 스님들은 적어도 2개월에 한 번 정도 머리를 깎았다. 그러니까 머리카락이 손가락 두 마디분에 이르기 전에 머리를 깎도록 되어 있었다. 중학생처럼 머리를 기르고 있는 티베트 스님들이 옛날 인도스님들의 모습에 더 가까웠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러고 보면 한국 스님들은 머리를 자주 깎는 경향이 있는 게 사실이다. 중국이나 티베트 스님만 하더라도 우리처럼 자주 깎지 않는데, 언제부터인지 우리는 머리를 깨끗하게 자주 깎는 것이 일상화되었다. 여름이라면 몰라도 요즘처럼 추울 땐 사실 머리를 자주 깎는 것도 보통 일은 아닌데 말이다.

여기서 잠깐 충격적인 얘기를 하나 할까 한다. 어느 삭발날, 도반스님이 머리를 깎고 외출을 했다. 전철에 앉아서 가는데, 어느 역에선가 전철이 멈추고 사람들이 내림과 동시에 머리 위에 물 한 방울이 뚝하고 떨어지더란다. 그런데 만져보니 물컹하고 미끌미끌한 것이…. 그렇다. 누군가 스님 머리 위에 침을 뱉고 갔다. 그것도 가래침을. 그 얘기를 듣고 얼마나 심장이 벌렁거렸는지 모른다. ‘어쩜 그럴 수가~’ 겪고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이 도시에 일어나고 있다.

그건 그렇고, 우리나라 사찰에선 보통 보름에 한 번 깎거나 열흘에 한 번 삭발을 하는 것이 대중생활의 규칙이다. 그러던 것이 점차 일주일에 한 번 깎게 되고, 요즘엔 사찰에 행사가 있거나 스님의 개인일정에 따라 깎는 경우도 자연스레 묵인하게 되었다. 어떤 분은 매일 수염을 깎으면서 머리도 함께 깎는다. ‘왜 그러지?’라고 하기보단 수염 먼저 깎고 머리를 나중에 깎으라는 율에 충실했다는 정도로 이해하려 한다. 일단 난 그 고충을 모르니까.

한편, 요즘엔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스킨헤드(Skin Head)를 발견할 수 있다. 삭발로써 자신의 사상을 표출하기도 하고, 패션의 일부가 되기도 한다. 그들로 인해 간혹 사복 입은 스님인 줄 알고 오해하는 일도 발생하는데, 어느새 삭발이 출가자 고유의 것이라고 주장하기 어려운 시대가 다가온 듯하다. 그러나 어느 쪽이든 간에 삭발을 함으로써 자신의 소신과 다짐을 뚜렷이 밝히고, 자신 있게 살아가는 모습이라면 충분히 멋진 일 아니겠는가.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

'불교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부처님 성도  (0) 2013.01.10
[스크랩] 연꽃에 담긴 이야기  (0) 2013.01.09
[스크랩] 연꽃처럼 깨끗한 마음 갔자  (0) 2012.12.24
오신체 대하여  (0) 2012.12.17
나를 보는 두가지 관점  (0) 2012.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