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심 어긋난 행동했을 때
나의 ‘초자아’가 나를 처벌
진화생물학의 두 축은 개체(Individual)와 유전자(Gene)다. 인간사회에서는 개체 중심의 이기적 행동을 대개 악(惡)으로 규정하고, 유전자 중심의 이타적 행위를 선(善)이라고 부른다. 개체의 행복을 추구하는 이기심과 동포의 유전자를 보전하게 만드는 이타심이 적절히 균형을 이룰 때 그 집단은 번성한다.
불전에서는 살생, 투도, 음행, 망어, 악구, 양설, 기어, 탐욕, 분노, 사견을 악이라고 한다.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종교나 철학에서도 이런 행동들을 악으로 규정하며 배척한다. 그러나 ‘개체’의 관점에서 보면 이런 악들이 사실은 ‘동물적 행복’의 원천이다. 이런 악들을 거리낌 없이 발휘할 때 아무도 제지하지 못하고, 아무 처벌도 받지 않는다면 그렇다는 말이다. 짐승의 세계에서는 그런 놈이 최강자가 된다. ‘라이온 킹’이 되는 것이다. 인간의 경우도 ‘금력’이나 ‘권력’을 추구하는 마음의 저변에는 이런 악이 도사리고 있다.
다른 생명을 죽여서 맛난 고기를 얻고, 인간 중에 미운 놈이나 경쟁자는 모두 해치워 버리며(살생), 남의 재물을 훔치고 빼앗아 내 것으로 만들고(투도), 매혹적인 이성이 눈에 띄면 마음대로 섹스하고(음행), 나의 이익을 위해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며(망어), 나에게 해를 끼치거나 멍청한 놈에게는 실컷 욕설을 퍼부어 주고(악구), 나의 이익을 위해 이간질을 하거나(양설) 온갖 말로 남을 칭송한다(기어). …… 이럴 때 그 누구도 대들거나 처벌하지 못하며, “악하게 살면 불행이 온다”는 인과응보의 이치도 없고 내생도 없다면, 목숨을 마칠 때까지 이런 악을 마음껏 행하며 살아가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그런데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남몰래 악행을 했어도 이를 목격하고 처벌하는 자가 있다. 다름 아닌 바로 ‘나’다. 남들은 나의 악행을 보지 못했어도 내가 나의 일거수일투족을 모두 보았고 아무도 나의 악행을 처벌하지 않아도 나의 양심이 나를 처벌한다. 나는 표정과 언어로 타인과 소통하며 수백만 년 진화해 온 가장 사회적인 동물인 ‘인간’이기에, 나의 유전자에는 ‘나를 위하는 본능’뿐만 아니라 ‘종족의 유전자를 보전하고자 하는 본능’ 역시 각인되어 있다. 후자에 속하는 마음이 ‘이타심’, ‘정의감’, ‘양심’ 등의 ‘동물적 선(善)’이다.
정신분석을 창시한 프로이드(S. Freud)는 인간의 마음이 ‘이드(Id), 자아(Ego), 초자아(Superego)’로 구성되어 있다고 보았다. 이드는 ‘본능’, 초자아는 ‘양심’에 해당하며 자아는 양심에 어긋나지 않고 현실에 맞추어 본능을 실현케 하는 ‘영민한 조절자’다. 이런 세 요소가 역동적으로 관계하면서 세상을 해석하고 행동을 결정한다. 내가 나의 양심에 어긋난 행동을 했을 때 나의 초자아가 나를 처벌한다. 무의식적으로 사고를 일으키거나 나의 생활을 파탄에 이르게 만드는 것이다. 프로이드는 이를 ‘자기처벌(Self-Punishment)’이라고 불렀다. 나의 불행이 우연히 일어난 것 같지만, 사실은 진화과정에서 나의 유전자에 각인된 나의 양심이 나를 처벌한 것이다. ‘자업자득(自業自得)’의 인과응보가 일어나는 것이다. 물론 이와 상반된 인과도 가능하다. 내가 남몰래 선한 행동을 했어도 내가 이를 목격했기에 나 스스로 보상한다. “선행을 쌓은 집안에 반드시 남은 경사가 있다(積善之家 必有餘慶)”고 하듯이 자꾸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다. ‘자기보상(Self-Reward)’이라고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다윈과 프로이드로 분석한 인과응보의 원리다. 물론 현생에만 적용되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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