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석기인처럼 살때 행복감 느낄 수 있어”
아무리 문명 발달해도 몸과 본능은
구석기시대 머물고 있다는 점 착안
여러 해 전의 기억이다. 늦가을 어느 암자에서 지인들과 큰스님을 모시고 마당에 둘러앉았다. 밤이 깊어지며 날씨가 쌀쌀해졌다. 누군가의 제안으로 모닥불을 피웠다. 불길이 오르며 탁탁 불씨가 튀었다. 얼굴들마다 벌겋게 불 그림자가 너울거렸다.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밤하늘에는 보석처럼 빛나는 별들이 가득했다. 전기불의 광해(光害) 때문에 도시에서는 볼 수 없는 장관이었다. 깊은 산속 암자마다 천체망원경을 설치하면, 청소년 포교에 제격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밤하늘의 별을 보는 사람에게는 ‘지상(地上)의 다툼과 욕망’이 들어갈 여지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모닥불을 주시하다가 검은 밤하늘을 바라보아도 시야에 잔상이 보이지 않았다. 태양을 보다가 눈을 감으면 둥근 잔상이 보이다가 서서히 사라진다. 일반 전등불의 경우도 한참을 주시하다가 눈을 감으면 시야에 잔상이 나타난다. 그러나 모닥불의 빛은 잔상을 남기지 않았다. ‘적외선치료기’라는 게 있다. 안과나 이비인후과에서 치료 후 환부에 쪼이는 붉은 빛의 전등이다. 살 속 깊이 파고드는 적외선의 열기로 혈관이 확장되어 환부의 신진대사가 활발해짐으로써 상처 회복을 돕는다고 한다. 모닥불은 자연의 적외선치료기였다.
인류가 짐승과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가 불을 사용한다는 점이다. 고고학적 발견에 의하면 인류가 처음 불을 사용한 것은 늦어도 약 100만 년이라고 한다. 현대의 우리들은 음식을 조리할 때 가스레인지를 사용하고, 조명에는 전등을 쓰지만 이는 극히 최근의 일이다. 100만년 이상 인간은 장작이나 짚단 등으로 불을 피워 취사를 하고 어둠을 밝혔다. 컴컴한 밤중에 모닥불을 뚫어지게 바라봐도 잔상이 생기지 않는 이유가 바로 이에 있었다. 우리의 눈은 장작불의 밝기에 동화되어 있었다. 진화생물학적으로 해석하면, 장작불의 밝기로 시력에 손상을 입은 사람들은 일찌감치 모두 도태되었던 것이다.
진화는 서서히 일어나지만, 문명은 급격히 발달했다. 인간의 몸과 본능은 구석기시대에서 별로 달라진 것이 없는데, 과학기술의 힘으로 인간이 사는 환경은 상전(桑田)이 벽해(碧海)가 되듯이 변했다. 수십 만 년 동안 인류는 해가 뜨면 잠에서 깨고, 해가 지면 잠에 들었는데, 오늘 이곳에서는 온갖 인공조명이 밤을 낮처럼 밝힌다. 자연에서는 직선을 찾기 힘든데, 현대인들이 사는 공간은 직선으로 가득하다. 네모난 방이 그렇고, 수직으로 선 건물이 그렇고, 평행으로 달리는 도로가 그렇다. “직선은 인류를 파멸로 이끕니다.” ‘건축치료사’라고 불리는 훈데르트바서(Hundertwasser)의 경고다. 채취와 수렵 시대에는 세 끼 밥을 모두 챙겨먹기가 쉽지 않았는데, 냉장고만 열면 먹을 것이 가득하다. 우리가 사는 환경은 점점 화려하고 편리해지지만, 그럴수록 마음은 힘이 들고 몸은 지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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