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런가 하면 더 나아가서는 종사에게 인가를 받았다고 하여 아견만을 늘리고, 고금의 문장을 이리저리 천착하여 불조의 말씀을 확인해 보고는 일체를 업신여긴다.
제 아무리 큰스님에게 인가를 받았다고 하더라도, 지금 여기에서 분명하지 못하면 모두 허망한 일이다. 그것은 견해를 세우는 일이라서, 오히려 공부와는 멀어지고 만다. 또한 경전을 읽다가 어느 순간 반짝하고 이치가 드러나게 되면, 자칫 깨달음으로 오인하는 경우가 있는데 모두 업을 짓는 일이다.
묻기만 하면 재주를 부리며 그것에 착 달라붙어 한 무더기가 되었는데도, 정반성(定盤星)을 잘못 읽었다는 것도 끝내 모르는 것이다.
참된 공부인이라면 아무리 뭔가 알았다고 하더라도 살얼음 밟듯이 더욱 겸손하고 조심해야 한다. 알고 보면 불법은 눈앞에 늘 분명히 드러나 있기에, 옛 분들도 ‘공개된 비밀’이라고 했다. 그것은 누구에게나 본래 갖추어져 있어서, 새삼 다시 얻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뭔가를 얻었다거나 이루었다고 하는 것은 저울의 눈금을 잘못 읽은 것이다.
명안종사를 만나 그 잘못을 밝히지 못한다면, 한없이 이런 경계에 머물게 되어 공부와는 영영 멀어지므로 참으로 경계해야할 일이다.
그러다가 누군가 그에게 방편을 베풀어 끈끈한 것을 떼어 주고 결박을 풀어 주면, 도리어 “나를 가만두지 않는구나, 나를 옥죄는구나. 도대체 무슨 심보냐!”라고 하니, 이래가지고야 어찌 구제될 수 있으랴! 오로지 단박에 그릇된 줄을 스스로 알아서 가지고 있던 것을 다 놓아버려야 하리라.
눈 밝은 선지식을 믿고 의지해서 공부를 한다면, 그 어떤 지적도 달게 받아들여서 향상일로에 나아갈 수 있게 될 것이다.
하지만 명안종사가 곁에 없다면, 서로 탁마할 수 있는 눈 밝은 도반이라도 만나 각자 마음을 비춰보면서 공부할 수 있어야 한다. 이렇듯 좋은 공부 인연 속에서 경책을 받아야만, 비로소 잘못된 집착을 돌아보고 스스로 놓아버릴 기회가 생길 것이다.
선지식이 되어 이와 같은 무리들을 만나면 모름지기 큰 솜씨로 단련시키되, 온개(一個) 도인, 반개(半個) 도인만이라도 깨치게 했다면 삿됨을 뒤집어 올바름을 이루었다 하리라. 이런 사람이야말로 도량을 헤아릴 수 없는 큰 인물이라고 하겠으니, 병을 많이 앓아 보아야 약의 성분을 잘 알기 때문이다.
시절인연 따라 안목을 열고 오랜 기다림 끝에 세상 밖으로 나가서 남을 지도하는 입장에 서게 된 선지식이라면, 분명한 안목을 가져야만 인연 있는 상대에게 이익을 나눠줄 수 있는 훌륭한 방편을 베풀 수 있게 될 것이다.
부처님을 ‘대의왕’이라고 부르듯이, 중생의 병을 잘 알아야 깨달음으로 이끄는 좋은 의사가 될 수 있는 것과 같다.
깨달은 사람은 마음 기틀(心機)을 모두 끊어버렸고 비춤의 체(照體)도 이미 잊었다. 그런가 하면 알음알이도 전혀 없고 그저 무심한 경지만 지킬 뿐이어서, 하늘 사람이 그에게 꽃을 바치려 해도 길이 없고 마군 외도가 가만히 엿보려 해도 보지 못한다.
도인은 마음이니 경계니, 혹은 체니 용이니 하는 입장에서 이미 다 벗어났기 때문에, 일체의 시비분별을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루 종일 생각해도 생각한 바가 없고, 온갖 마음을 다 일으켜도 무심을 여의지 않는 것이다. 하루 종일 일없이 온통 자취가 다 끊어졌으므로 귀신도 엿볼 수가 없다. 반면 아무리 온종일 잘 앉아 있어도 깨달음이 없다면, 참다운 공부인이라고 할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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