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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이야기

[스크랩] 중생이 마음깨치면 부처이고 극락이다

“중생이 부처, 마음 깨치면 극락

생사윤회 해탈해 불생불멸한다”

달마대사가 동쪽으로 전한 선(禪)은 사조 도신대사가 쌍봉산에 도량을 만들어 정착하자 비로소 안정이 되었다. 사조를 이어 오조가 된 홍인대사는 쌍봉산 동쪽으로 옮겨 오조사를 개산하여 교화를 시작한다. 사조와 오조가 도량에서 법문을 하고 도를 안내하니 세상 사람들은 이를 일러 ‘동산법문(東山法門)’이라 한다.

동산법문은 쌍봉산의 동쪽 산이라는 지명에서 유래하지만, 이 법문은 이전의 법문과는 다른 특색이 있었다. 그동안 중국, 한국, 일본의 동아시아 불교는 주로 인과(因果)법문을 했다. 인과법문이란 생사윤회를 인정한 바탕 위에 착한 일하면 복을 받는다는 입장이다. 이 생에 내가 복이 없고 괴로움을 받는 것은 전생에 복 짓는 일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착한 일을 열심히 해서 복을 쌓으면 금생이든 다음 생에라도 반드시 그 복을 받는다는 것이다. 중생이 세세생생 열심히 복을 짓고 수행해서 깨쳐야 부처가 된다는 입장이 인과법문이다.

하지만, 선(禪)의 동산법문은 달랐다. 견월지망(見月指忘), ‘손가락을 보지 말고 달을 바로 보라’는 법문이다. 중생이 모두 불성을 지닌 본래 부처고, 현실 이대로 극락이라 했다. 중생의 본래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니 밖에서 찾지 말고 마음을 깨치기만 하면 된다. 이 생이 고통스럽고 복이 없다고 다음 생에나 극락을 기약하는 것은 착각이니 착각만 깨면 그대로 극락이라는 것이다. 당시나 지금의 인과법문은 중생과 괴로움을 인정하고 부지런히 복을 쌓아 다음 생에 복된 사람을 기약하자는 것이라면, 동산법문은 중생이 그대로 본래 부처고 괴로움은 착각이니 마음을 깨치면 생사윤회를 해탈하여 불생불멸의 부처로 산다고 법문했다. 오직 깨달음만을 인정하는 선의 입장에서는 오직 깨달음세계인 달만이 사실이고 현실이지 방편인 인과법문은 손가락일 뿐이다. 이 법문은 비록 희유하였지만, 조금씩 호응을 얻어 갔다.

그런데, 이 선이 천하에 알려지는 결정적인 계기가 있었으니, 바로 도신대사가 당나라 태종 황제의 초청을 거절한 대사건 때문이었다. 당시엔 황제의 명을 거절하는 것은 곧 죽음을 뜻했다. 그런데 대사는 네 번이나 황제의 초청을 거절한다. 이 역사적인 사건은 <경덕전등록>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다.

  
 

“태종(太宗)이 대사의 도풍을 듣고, 풍채를 보고자하여 조서로서 서울로 부르거늘 표를 올려 사양하였다. 이렇게 하기를 전후 세 차례나 반복하니 네 번째에는 사자에게 명령하되 ‘과연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거든 목을 베어 오라’ 하였다. 사자가 산에 와서 조서를 전하니, 대사는 목을 뽑아 칼 앞으로 가져가되 얼굴빛이 태연하였다. 사자가 이상히 여기어 그대로 돌아가서 장계를 올리니, 황제는 더욱 흠모하는 마음을 내어 진기한 비단을 하사하고, 그의 뜻을 이루게 해 주었다.”

이 소식은 불교계는 물론이거니와 당나라 전체에 알려져 도신대사는 단박에 유명 스타가 되었다. 세상 사람들은 말했다. 도대체 어떤 도인이기에 황제의 명을 네 번이나 거역해도 목숨을 부지하고 상까지 받았단 말인가? 이런 말들이 불교계와 세간에 유행하면서 쌍봉산 도신대사와 동산법문은 천하에 그 이름을 알렸다. 교종과 율종으로부터 핍박 받던 선은 일시에 위의를 갖추게 된다. 그리하여 “여러 주에서 도를 배우는 이들이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왔다”고 <속고승전>은 기록한다.

그 중에 저 멀리 신라 법랑(法朗)스님도 있었는데, 도신대사로부터 깨달음을 인가받아 귀국하니 구산선문 중 봉암사 희양산문으로 법맥이 이어졌다. 이것이 조사선이 한반도에 전해진 첫 기록이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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