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불교이야기

[스크랩] 마음공부 수행하기

부처님께서 <대품반야경>에서 말씀하시기를 “반야바라밀 법문 하나가 일체의 어둠을 없애고 일체 불만을 없애서 안온하게 하고, 부처님의 광명을 쓰는 사람으로 만들고 일체 종지를 이루게 한다. 반야바라밀을 수행하면 생사고해에서 벗어나고 무한의 힘을 구족하게 된다”고 하셨다.

우리는 바라밀 수행을 통해 고난을 이기고 불행을 극복하고 소망을 성취해서 밝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 수행의 기본은 반야바라밀에 대한 부처님 가르침을 믿고 이해하는 것, 그리고 일심으로 정진하는 것이다. 반야바라밀에는 집착, 간탐, 미움, 원망, 공포, 불안 등 일체 어두운 마음이 없다. 반야 지혜는 자기 내면세계와 환경 조건에서 공(空)을 관하는 것으로 자기마음을 허공처럼 맑고 밝게 하는 것이다.

일체의 망념, 부정적인 에너지가 없다는 것을 알고 마음을 비워야 한다. 나 잘났다는 아만과 불만이 사라지기 전에는 행복해질 수 없다. 지엽적인 불평불만, 미움, 원망, 집착이 내 마음에 나타날 때마다 꿈속의 경계처럼 볼 줄 알아야 한다. 우리 마하반야바라밀 참마음은 하늘 차원인데 거기에 먹장구름이 왔다 갔다 하는구나 하고 생각하면 된다. 내 마음은 밝고 빛나는 거울자리인데, 먼지가 끼어 잘못 일그러진 영상이 나타나고 있구나 하고 관하면 우리에게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 실천해야 한다. 해보면 나를 장악하지 못하고 지배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원망이나 시기질투, 집착이 누군들 없겠나. 그것의 정체를 보면 실제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나를 나라고 착각하면서 벌어지는 현상이기 때문에 이를 관하면 슬그머니 사라진다. 위대한 부처님 광명이 열릴 것이다. 이런 원리가 수행하는 과정에 있다.

부처님 지혜광명이 하늘의 태양처럼 우리 마음속에 빛나고 있으며, 내가 숨 쉬는 생명활동 하나하나,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니다. 법계인연의 무상한 흐름이 나의 삶으로 흐르고 있는데 그 속에 내가 있는 것처럼 착각하고 있는 게 모든 괴로움의 근본이다. 내가 내 삶을 컨트롤하려는 게 문제를 일으키고 있다. 삶이 멋지게 전개되는데 나라는 놈이 끼어들어 헝클어지는 것이다. 나라는 위대한 생명은 진리대로 잘 작동하고 있다. 내가 숨 쉬는 모든 활동 하나하나가 참마음 우주대생명, 부처님 위신력으로 뒷받침돼 작용되고 있는데 이 원리를 모르고, 하늘차원의 마음을 모르고 애착, 집착, 미움, 원망, 불안, 두려움 등 구름차원의 마음을 내 마음이라고 동일시하며 살았구나 하고 놓아버려야 한다. 그런 것들은 내 머릿속에 프로그래밍 된 것이지 실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어두운 그림자들은 원래 우리 참마음엔 없었던 것이다. 살면서 프로그래밍된 것일 뿐이다. 아만이나 집착, 자기중심적인 삶, 내가 알고 있는 이 마음은 내 참마음이 아니다. 원인이 심어져서 요인이 인연 따라 나타나는 것이다. 요인을 제거하면 사라지게 된다. 이런 위대한 부처님 위신력을 모르고, 마하반야바라밀 하늘차원의 마음을 모르고 아만과 불만, 두려움, 집착에 속아서 내 마음과 동일시하면서 살았구나 하고 관찰해라. 내 마음이 아니구나 하고 알아차리면서 “마하반야바라밀” 해야 한다. 알아차림 없이 “마하반야바라밀”을 외면 헛바퀴를 도는 것이다.

“마하반야바라밀” 하면 참 생명자리가 원만해지고 완전한 지혜와 자유로 충만된다. 내가 알고 있는 나를 나라고 동일시하는 것이 지금 우리가 살면서 힘들어 하는 그 모든 괴로움의 근원이라는 것을 잘 살펴야 한다. 우주법계의 인연, 부처님의 위신력에 맡기고, 마하반야바라밀의 위대한 공력을 믿고 맡기면, 내 마음을 맑고 밝아진다. 마하반야바라밀에 나오는 참생명의 지혜와 자비로 살면 우리 삶이 행복해진다.

내가 알고 있는 ‘나’는 가짜로, 내가 만든 감옥이다. 나에 집착하면 에고(Ego)의 속박 속에 갇힌 것이다. 살면서 불편함을 느낀다면 에고가 주인 노릇하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두려움, 의심, 근심, 걱정은 에고와 연결된 부정적인 에너지다. 이렇게 에고에 속박된 상태에서 어떻게 벗어날 것인가. 참나, 참마음, 마하반야바라밀 세계를 믿고 그 힘으로 살 때 속박에서 벗어나 평화롭고 자유로워진다. 내 생각, 자기 관념에 지배당하지 않을 때, 나 중심으로 좋아하거나 싫어하는 감정의 덧에 걸리지 않을 때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워진다. 분노와 두려움에 빠지지 않을 때 우월감보다 겸허한 마음으로 행동할 때 허세보다 부드러운 마음으로 남을 대할 때 누구를 헐뜯기보다 찬탄하는 말을 할 때 사랑하는 마음을 표현할 때 우리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산다.

우리 참마음이 자비와 평화인지 어떻게 알까. 두려움이나 근심에 사로잡히기보다 평화롭고 평온하고 행복을 느낄 때 우리는 평화롭고 자비로운 마하반야바라밀 세계에 접속됐음을 알 수 있다. 칭찬, 비난, 남들의 호평, 혹평에 휘둘리지 않을 때 남들의 인정을 받으려고 노력할 필요도 없다. 우리 참마음은 지혜롭고 자비로우며 아름답다는 것을 믿을 때 마하반야바라밀의 평화로움을 느낄 수 있다. 부처님께 마하반야바라밀 참마음을 맡기고 믿기만 해도 우주법계가 자유로워지고 삶이 평화로워진다.

 

모든 미움과 불만을 버리고 사랑과 용서를 할 때 우리는 자유와 평화 행복의 삶이 열리는 마하반야의 세계를 열린다. 불평, 불만이야말로 참마음을 덮는 업장, 불평, 불만이야 말로 참마음의 하늘을 덮는 업장이다. 나 잘났다는 마음, 불평, 불만을 내려놓고 감사하는 마음을 전하면 세상이 달라질 수 있다. 마음이 어지러울 때는 판단을 중단하고 “마하반야바라밀”을 외자. 그럴 때 진실로 평화롭고 자유로워지는 마하반야바라밀의 위력을 느끼게 된다.

이런 것들을 체험하는 게 중요하다. 체험하지 않으면 이론이고 관념일 뿐이다. 그냥 나대로 힘겨운 삶이 이어지는 것이고 나와 관계없다. 이런 것은 반야바라밀의 삶이 아니다. 앞서 얘기한 것들이 체험을 통해 우러나올 때 반야바라밀 수행을 바르게 하는 것이다. 체험을 하게 되면 저절로 감사하는 마음이 생긴다. 감사는 어떤 일이 잘 될 때 내 마음에 맞을 때 좋을 때만이 아니라 언제나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야 한다. 형식적인 감사가 아니다. 에고를 녹이는 마하반야바라밀, 평화와 행복과 연결되는 감사가 진정한 감사다. 나한테 잘해주니까 감사한 건 상거래에 불과하다. 조건 없는 감사는 마하반야바라밀과 통해야만 이뤄질 수 있다. 무조건 감사와 마하반야바라밀 수행은 상보적인 관계이다. 감사가 기적을 낳는 위대한 수행이 될 수 있다.

자기와 가정에서 부처님 공덕을 빛내려면 자기가 행복해야 한다. 내가 행복해야 남에게 전해줄 수 있다. 그게 전법에너지가 되는 것이다. 자신은 힘들면서 거짓말 하면서 전법 펼 수 있겠나. 내 마음이 자유롭고 평화로워지면 그 에너지로 이웃을 대할 때 전법행자가 될 수 있다.

반야바라밀 수행을 하면 행복에너지로 살고 이웃에 기쁨을 전하게 된다. 반야바라밀은 지혜완성, 부처님 무량공덕이기 때문에 불가사의한 일이 생기게 된다. 마하반야바라밀은 창조, 평화, 조화, 모든 가능성의 원천이라는 것을 확실히 믿고, 모든 힘의 근원이 마하반야바라밀에 있음을 믿고 일심으로 반야바라밀 수행을 하면 창조묘용의 참다운 행복이 열린다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셨고 우리가 체험을 통해 느낄 수 있다. 확실히 믿고 반야바라밀수행을 잘 해야 한다. 바르게 하고 꾸준히 하고 간절하게 해야 한다. 광덕스님이 수행일과를 지키라고 한 이유도 여기 있다. 마하반야바라밀 위대한 위덕이 작동되려면 바르고 간절하게 꾸준히 해야 한다.

빨리 깨치려고 욕심 부리면 안 된다. 꾸준히 아주 꾸준히 할 뿐이다. 공부가 잘 안된다고 짜증내서도 안된다. 가다보면 넘어질 수도 있다. 그 때 실망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다시 일어나서 가면 된다. ‘아! 내가 넘어졌구나’ 하고 빨리 알아차리는 게 중요하지 자기를 학대하거나 좌절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깨달음의 세계, 참다운 행복의 세계로 방향을 전환하고 열심히 꾸준하게 갈 뿐이다. 처음에는 어렵지만 꾸준히 하다보면 쉬워진다. 공부의 힘을 얻는 것이다. 몸가 마음이 경안(輕安)해지고 행복해지며, 수행하는 힘으로 모든 것이 잘 된다. 확실한 신심을 가지고 크게 발심해 바르게 간절하게 꾸준하게 수행하자.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