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설법이야기

[스크랩] 내 자신이 바로 영험있는 법당이다

육체는 낡으면 허물어지게 마련

살아있는 영가도 천도할 수 있는

간화선 공부로 자성불 찾으시길

불교에서는 “진리는 생기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 본래부터 존재하는 것이다”고 가르친다. 따라서 진리의 길로 들어갈 때는, 배워서 이해한 지식과 상식을 가지고 들어가면 안 된다. 이전의 알음알이는 모두 버리고, 열린 마음으로 들어가야 한다.

깨달음의 차원은 대긍정(大肯定)이며, 여기에는 부정(否定)이 있을 수가 없다. 깨닫게 되면, 긍정하지 못할 것이 하나도 없게 된다. 진리 속에서는 신비까지도 생겼다 없어진다. 하지만 어리석은 사람은 막상 신비로운 일이 눈앞에서 벌어지면, 그만 호기심에 못이겨 그 형상을 좇아가기 쉽다.

우리는 일상생활을 하는 가운데, 알게 모르게 정신적인 우상과 물질적인 우상 중 어느 한 곳에 빠져 있기 쉽다. 깨달음은 이 두 가지의 우상 숭배를 타파해준다. 우리가 불교를 믿는 것은 우상을 타파하고, 바른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다. 따라서 자기가 하는 기도, 염불, 간경, 참선 등의 수행이 만일 기복불교(祈福佛敎)를 행하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면, 스스로 돌아봐서 빨리 간파하고 참회해야 한다.

종교, 특히 불교를 믿거나 믿으려고 마음먹은 사람들에게 드릴 중요한 말씀은 ‘영험(靈驗)있는 법당(法堂)에 신령스러운 기운이 깃들어 있음’을 자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영험있는 법당은 바로 우리 자신이다. 영험있는 법당에 자성불(自性佛)이 계시기에, 신령스런 기운이 있다고 하는 것이다.

우리의 육체는 늙게 되어 있고, 늙으면 영험있는 법당도 낡아 허물어지게 되어 있다. 그러므로 영험있는 법당이 낡아서 다 허물어지기 전에, 일찍부터 종교를 잘 믿고 진리를 올바르게 추구해야 한다.

죽으면 영험있는 법당이 그냥 없어지고 마는가? 그렇다면 종교도 윤리도 다 필요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 법당은 죽으면 또 다른 모습으로 변하지, 소멸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다시 영험있는 법당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자기도 모르게 삼독과 번뇌 망상으로 어두워져 있는 마음을 지혜광명으로 신령스럽게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깨달은 분(善知識)’에게 살아있는 영가(靈駕)와 죽은 영가를 함께 천도할 수 있는 인연을 베풀어 달라고 요청해야 한다. 법의 인연이 열리면, 쓰러질 때까지 뼈저리게 공부하지 않으면 안 된다.

불교에서는 “기적을 행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런 짓 하지 말라. 자주 기적을 행하면 진리를 깨달으려 하는 마음이 없어지고, 그런 형상만을 추구하게 된다”고 했다. 기적을 통해 남을 기만하고 또 자기도 속는 어리석은 믿음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 설사 공부 중에 남의 마음이 모두 읽혀지고, 벽이 투시되며, 저 사람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다 알 수 있다 하더라도, 이와 같은 일들은 진리를 깨달을 수 있는 공부에 방해가 되는 것일 뿐이다. 모두 진정한 지혜와는 거리가 먼 것이니, 그런 현상이 나타나더라도 감추고 남들에게 드러내 보이지 말아야 한다. 오직 마음을 깨달으려고 하는 순수한 목적으로 공부해야 한다.

불교는 궁극적으로 부처가 무엇인지, 마음이 어떻게 생긴 것인지, 진리가 무엇인지를 깨달으라는 것이다. 배워서 이해하는 것과 스스로 깨달아서 밝게 아는 것은 현격한 차이가 있다.

어떤 종교가 진리를 바르게 드러냈으며, 가장 쉽고 분명하게 깨달음을 체험하게 해줄까? 그 답은 바로 불교다. 종교적인 상식과 지식은 진리에 접근할 수 있는 방편은 될지언정, 진리를 깨닫게 해주지는 못한다. 오직 지혜광명(智慧光明)이 열려야 하며, 이 지혜광명은 빛이 없는 지옥의 어둠까지도 밝히고 깨트릴 수 있다. 부처님은 우리들에게 본래 구족하고 있는 지혜광명을 밝힐 수 있도록 가르쳐 주셨다. 우리는 진리를 스스로 깨달을 때까지, 부처님의 정법과 인연을 지으며 열심히 공부해야 한다.

출처 : 좋은세상함께만들기
글쓴이 : 수미산 원글보기
메모 :